봄바람이 아직 차다. 찬 겨울바람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얼굴에 닿는 바람은 차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친구들과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로 가득한 교실이 참 불편했다.
그래서 분위기를 풀어내려고 주변 친구들에게 말도 잘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하곤 했다. 그렇게 만나 가까워지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한껏 가까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개월 정도. 매서운 늦겨울바람을 이겨내고 포근한 봄바람을 지나 한낮의 기온이 체육시간을 보내고 나면 땀으로 젖기 시작하는 초여름을 향한다.
그럴 때마다 아쉬운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생일이 봄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전인 3월 말, 생일을 맞이하지만 친구들에게 자신의 생일을 말하기가 무척 어려웠더랬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작게나마 편지라도 써주며 서로의 감정을 나누면 좋을 텐데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제법 가까워졌다고 느낄 5~6월 즈음 친구들은 서로서로에게 물었다.
“넌 생일이 언제야?”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즈음 그녀의 생일은 이미 2~3개월 지나있다.
그러니 물어본 친구도 어색해지고 답하는 그녀도 괜스레 더 속이 상해진다.
그럴 때 가끔 이렇게 말하는 친구가 있다.
“아 벌써 지났구나.. 그럼 너는 내년 3월에 생일 챙겨줄게.”라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상 시간이 지나고 반이 바뀌어 학년초를 함께 보낼 수 없게 되어 같은 반이 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학년이 바뀌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후 생일을 맞이하는 친구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왜 하필 그녀는 봄 그것도 초봄에 태어난 것일까.
집에서도 생일이라고 해서 따뜻한 미역국이나 사랑스러운 축하말을 듣지도 못하는데, 친구들에게 조차도 제대로 듣지 못하니 그 서러움은 참 컸다. 그리고 3월은 신학기 시작으로 집집마다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시기였기 때문에 여윳돈 없이 살아가는 그녀의 집은 당연히 생일 따위는 챙길 여력도 없었다.
5~6월이 지나 어색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을, 겨울. 친구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맘껏 축하해 주고 친구들을 챙겨주면서 늘 쓸쓸한 생각에 잠겼다.
‘참 복도 없다. 왜 하필이면 이런 보릿고개 시절에 태어난 걸까?’
‘다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데 나는 왜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과연 나는 축복받고 태어난 게 맞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있을까?’
언제나 봄은 온다. 추운 겨울을 지나면 여지없이 봄은 오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만날 봄이다.
일 년 중 하루 ‘생일’에 꽂혀서 남들과 조금은 다른 생일을 맞는다는 이유로 박복함을 한탄하던, 불행함에 속상해하던, 사랑받지 못함에 쓸쓸해하던 그녀는 이제 ‘봄’ 날에 누구보다도 많은 생일축하를 받는 사람이 되어 있다. 누구보다도 복이 많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활짝 웃으며 지내고 있다.
오늘은 포근한 바람이 분다. 지구의 온난화 탓일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 탓일까.
같은 봄인데 그녀가 바라보는 봄은 이렇게 달라져 있다.
앞으로 만날 봄은 지금처럼 늘 ‘봄날’ 같기를, 건강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