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우 Apr 09. 2023

튼튼하게 뿌리내린 나무가 되고 싶다

동글동글하게 살아지기를


아는 대로 느낀 대로 척척 살아지는 경우가 어디 있던가.
무엇이 쉽사리 단번에 얻어진다면 그 또한 귀한 것이 아닐 터이다. p34
 

은유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

새벽 3시 반 벌떡 일어나 앉아 둘러본다. 모두 곤히 자고 있다. 최소한의 움직,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엄마와 동생 사이사이를 건드리지 않고 잘 건너 조용히 미닫이 방문을 연다.
디딤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깜깜한 부엌을 지나 공용 수돗가로 가 불을 켠다.
찬물에 고양이 세수로 남아 있는 잠을 깨우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들기 전에 챙겨놓은 가방을 들고 겉옷을 걸치고는 살금살금 방을 나선다.
인기척을 최대한 줄이며 계단을 내려가 컴컴한 길가로 나선다.

집에서 걸어 15분 거리 시립도서관 앞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넘었지만 벌써 줄을 서고 있다.
아 조금 더 일찍 일어났어야 하는 건가 하는 마음에 맨 앞에 서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4시 30분 도서관 입구에 불이 들어온다. 내 앞으로 4명, 내 뒤로는 제법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몇 사람은 낯이 익다.
도서관에서 직원이 나와 몇 명이 줄을 서있는지 대충 분위기 파악을 하고 들어간다.
모두들 도서관 불빛을 이용해 손에 들고 있는 노트나 책을 보며 옷깃을 여민다.
5시 5분 전 도서관 입구가 열리고 ‘자 이제 들어오세요’라는 안내가 들린다.
사람들은 서로의 거리를 좁히며 입구를 향해 종종걸음을 옮긴다.


공부하는 게 참 좋았더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각의 과목들이 재미있었고,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이 들어와 조금씩 다른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수학선생님, 영어선생님, 국어선생님, 물상선생님, 생물선생님 등등 정말 너무나 신나는 시간이었다. 국민학교에서는 한 선생님에게 국어부터 체육과 음악까지 배우다가 매시간마다 달라지는 환경이 참 좋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 같다고나 할까. 사실 요즘은 뷔페에 갈 일이 거의 없지만 어쨌든 한 가지 음식만 먹기보다 다양한 음식을 한곳에서 먹어볼 수 있을 때 느끼는 그런 다양함에 나는 신이 났었다.


중학교 1학년을 진학하고 느꼈던 느낌이었다. 즐기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더욱더 하고 싶어지는 사람의 심리를 그때의 나는 알아갔던 것 같다.
허나 이런 나의 마음이 환경상 지속될 수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침 먹고 간 설거지를 해놓았어야 했고, 연탄불을 시간 맞춰 갈아야 했으며, 저녁밥은 365일 중 300일 가까이 내가 했어야 했다. 그렇게 집안일을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면 과목별 공부를 예습과 복습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엄마의 종잡을 수 없는 기분 탓에 규칙적인 공부시간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방청소, 집청소를 하느라, 어느 날은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으니 불 끄고 자느라 내가 필요한 날,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도서관에 가는 것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지 못했지만 어린 마음이었기에 엄마에게 반항하거나 화를 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그래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다만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 상황 덕분인지 나는 더욱 공부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도서관을 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쉽사리 얻어지지 않았기에 내겐 더욱더 간절했던 것 같다. 이런 간절함에서 오는 집중이 지속됐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진 삶을 살았을지 가끔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도서관을 향하는 이런 열정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성적이 당신이 바라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새벽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게 맞느냐’며 꼬투리를 잡아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는 것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중학교 2학년때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등수인 반에서 2등을 했고, 전교 500여 명중에서는 20등 안에 들지 못했지만 너무나 뿌듯했던 시간이었는데 ‘누구네 아들은 방하나에서 다섯 가족이 같이 사는데도 전교 1등을 했는데 너는 그게 뭐냐’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때 너무나 속상했다. '이게 뭐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야단을 맞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사실 엄마는 그때 직장을 다니지도 않았고 아빠가 외국에서 벌어서 보내주는 돈으로 그냥 살림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집에 잘 없었고, 집안일을 나에게 시켰었더랬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반항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가 너무 미웠다. 아니 사실 싫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는 대로 느낀 대로 책에서 배운 대로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계속 잘했다면 좋았으련만 나의 반항, 사춘기는 오고야 말았고 공부하는 시간보다 먼 하늘을 바라보면 한숨을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니 성적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고 나는 좌절을 배워 나갔다.

​---------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 비단 이때뿐이었겠나 싶다. 아는 대로 생각한 대로 척척 살아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뭐든 쉽게 얻어지지 않아 더욱더 귀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들을 수없이 겪어내고 반복하며 지금의 이 자리에 와 있다.

앞으로도 나의 인생이 척척 살아지지는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라는 사람을 글로 써 내려가고 많은 책을 읽어가며 깊은 사유를 지나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하게 뿌리내린 한 그루의 나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아쉬운 상황이 와도 쉬이 좌절하지 않으며 잘 살아낼 수 있기를, 책에서 배우고 익힌 대로 납작하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살아지게 되기를, 그렇게 얻어지는 현실이 감사함으로 가득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그녀가 바라본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