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꾼 미쉘 Dec 04. 2020

아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손을 펼쳐본다.

      

어느 날인가 친구가 가족의 손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사진 속 네 식구의 손이 묘하게 닮아있었다. 첫째였던 친구는 엄마 손을 닮았다고 했고, 둘째는 아빠 손을 닮았다고 했다. 서로 닮아있는 게 당연한 일일 테지만 가족의 손을 이렇게 대놓고 비교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궁금해졌다. 

내 손은 누굴 닮았을까. 


집에 오자마자 나는 엄마 손과 비교해봤다. 엄마 손과 내 손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 아담한 손에 비해 손톱이 큰 엄마 손과 다르게 내 손은 손바닥이 손가락보다 크고, 손톱은 어린아이들 손톱처럼 작고 동글동글하다.  


'아빠 손을 닮았나?' 


나는 TV를 보고 계신 아빠한테 다가가서 “아빠, 손 좀 펼쳐보세요.”라고 말했다. 아빠는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넓게 펼치셨다. 다른 것보다도 크고 두툼한 흰 손에 나 있는 검은 털이 눈에 띄었다.   


'설마.. 내 손이 곰돌이 같은 아빠 손이랑 닮은 건 아니겠지...?'


아빠 손 옆으로 조심스레 내 손을 펼쳐보았다. 이럴 수가! 오른 손 중지에 박힌 굳은살 모양마저 비슷했다. 아빠 손과 내 손을 번갈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어떻게 손이 이렇게 똑같이 생겼을 수가 있지? 내가 아빠 딸이 맞긴 맞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내 손이 아빠를 닮았는지 삼십 년이 지나도록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이 내심 충격적이었다.  그날, 나는 아빠 손을 처음으로 자세히 본 것 같다.      


아빠의 손은...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처음으로 내밀어준 든든한 손이었고,처음 젓가락 잡는 법을 가르쳐 준 다정한 손이었고, 가끔은 회초리를 드는 무서운 손이었고, 지쳐 있는 내게 용기 내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손이었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한 위대한 손이었다.     


나는 아빠 손을 닮았다는 사실이 든든하고 좋았다. 그 순간, 나는 아빠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평소에 안 잡아본 아빠 손을 잡을 생각을 하니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나는 그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빠 손을 닮아서 손만 너무 큰 거 같아. 원래 여자 손은 작고 아담해야 예쁜데.”

아빠는 허허 웃으셨지만, 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코끝이 시큼해진다. 

'그날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빠 손을 꼭 잡아드릴 텐데...'


나는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 싶을 때면, 가끔 내 손을 펼쳐본다. 그리고 그날 아빠한테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조용히 고백하곤 한다.


아빠를 닮아서 좋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작가의 이전글 아빠한테 배운 삶을 대하는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