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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미쉘 Dec 13. 2020

이해할 수 없던 아빠를 이해하게 된 순간,

나를 이해하게 된다...


어린 시절, 나는 세 살 차이가 나는 둘째 동생과 자주 싸웠었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똑같이 벌을 세우셨다. 일명 ‘한 시간 동안 손 들고 벌 서기’.  동생과 나는 나란히 서서 양손을 들고 한 시간 넘게 아빠의 설교를 들었다. 아빠의 말씀은 다 옳았다. 무슨 말씀 인지도 다 알아들었다. ‘다음부터는 싸우지 말아야지.’라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같은 내용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빠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보다 ‘대체 팔은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하는지, 다 알아들었는데 아빠는 왜 했던 말씀을 계속 반복하시는지. 이럴 거면 차라리 회초리로 몇 대 맞고 끝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했다. 원수처럼 서로를 노려보던 동생과 나는 어느새 동지가 되어 아빠의 눈치를 살폈고,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아빠는...

정말 왜 그러시는 걸까?

왜 했던 말을 하시고 또 하시고 몇 번을 반복하셔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 표정을 지으시는 걸까.’


나는 혼이 날 때마다 정말이지 그런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었다. 해가 거듭해도 나의 이런 불만 섞인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만 아빠의 기나긴 설교를 듣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아빠의 말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벌을 서서 아빠의 설교를 듣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집 밖에서도 나의 이런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한테, 스무 살이 넘어 직장에 가서는 상사한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이런 모습 때문인지 나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매사에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으로 비추어졌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의 의견을 내놓거나 거절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고민에 빠졌다. 


‘나는 왜 이럴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아빠한테 혼났던 희미한 기억과 감정이 가슴속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라고 말하기엔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고, 아빠를 탓하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미성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올라오면 아예 고민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막내동생과 우연히 아빠한테 혼났던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막내동생도 아빠에 대한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동생도 아빠한테 혼날 때 아빠가 했던 말씀을 계속하시니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하루는 “그러니까 아빠가 말씀하시는 게 이런 거죠?”라고 핵심을 짚어서 여쭤봤는데, 아빠가 “그래,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이제 알겠지?”라고 하시며 그 부분에 대해 더는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아빠가 그래서... 그렇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질리도록 반복하셨던 거였구나.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까 봐... 나를 이해시키시려고...’ 하지만 속이 펑 뚫리듯 명쾌한 느낌도 잠시, 몹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막내동생처럼 한 번 아빠한테 여쭤볼걸, 말씀드려볼 걸.

아빠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다고 나의 생각과 마음도 표현해볼 걸.

그랬다면 아빠는 입 아프게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으셨을 텐데. 

나는 그렇게 오래 손 들고 벌을 서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그 시간들이 쌓였다면 아빠와의 의사소통이 더 자연스러워졌을 테고,

아빠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호랑이처럼 화난 아빠가 무서웠고, 벌을 서면서 아빠한테 질문하거나 내 생각을 말할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해서, 나는 아빠가 화나시지 않게 눈치 보기 바빴고, 아빠가 화나시면 도망치기 바빴다.     


아빠가 살아계시다면,

내가 만약 이런 얘기를 지금이라도 아빠한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아빠는 어떤 말씀을 하실까.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나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정과 상황에 사로잡혀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만약 내가 혼나고 있는 상황보다 혼나는 이유에 대해 집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아빠의 화난 목소리와 표정이 아닌 아빠의 말씀에 집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무섭기는 해도 한 번쯤은 아빠의 의중을 여쭤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숨겨진 진심을 읽을 수 있는 지혜,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삶의 지혜를 갈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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