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동생들이 집을 비우는 바람에 나는 아빠와 단둘이 집에 있었다. 나는 아빠한테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 문고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아빠는 반가운 표정으로 딸의 데이트 신청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가까이 지난 기억이라 교보 문고에서 어떤 책을 봤는지, 그날 아빠랑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건,
그날 서울은 흰 눈이 펑펑 쏟아졌고,
쌀쌀한 날씨에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갔던 광화문역 근처의 카페에서 아빠와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던 것이다.
카페에 들어선 나는 아빠한테
“아빠, 무슨 커피 드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살짝 당황해하시며
“응? 그냥.. 커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빠, 카푸치노 주문할게요.”라고 하자, 아빠는 "그래.. 잘 모르니 네가 알아서 시켜라."라고 하시며 수줍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카페 안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셨다.
그 순간, 알았다.
아빠는 이런 카페에 오신 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나에게는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빠에게는 낯선 곳이라니. 내가 당연하게 즐기는 이 커피 문화에 대해 아빠는 전혀 모르고 계셨다는 사실이, 딸이 셋이나 되는데 지금껏 아빠한테 아무도 커피 한 잔 사드린 적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죄송스럽고 속상했다. 그리고 오늘 아빠와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원래 커피를 즐겨 드시지 않는다.
그래도 집에서 가끔 커피믹스를 드시곤 했었는데 카푸치노 위에 곱게 갈아진 우유 거품을 보며 아빠는 궁금한 표정으로 물으셨다.
“대체 커피 위에 이게 뭐냐.”
“우유 거품에요, 아빠. 드셔 보세요.”
아빠는 거품을 호호 불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야, 맛있네, 카푸..치노? 이거.”
입술에 흰 거품을 묻히고 환하게 웃으시는 아빠 모습은 꼭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아빠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빠는 원래 좋아도 좋다는 표현을 잘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날은 커피가 참 맛있다며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눈길을 뚫고 아빠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부드럽고 따뜻한 카푸치노처럼 마음이 뜨끈해졌다.
아빠한테 받은 용돈이 아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아빠한테 무언가를 사드렸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