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따라 걸으면 진짜를 알게 돼
저는 필사 필사, 왜 그리 필사를 이야기하는지 잘 몰랐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20대 때 소설 수업을 받으며 좋은 문장은 꼭 필사를 해보라는 선생님들의 추천이 계속되어해 보기로 한 거죠. 오정희 선생님의 단편소설을 하나씩 따라 쓰기 시작했어요. 오정희 선생님의 문장은 유려하고 심리묘사가 뾰족하기로 유명하죠. 역시, 문장가의 문장은 따라 쓰기에 시간이 아깝지 않더라고요. 한자 한자 따라 쓰는 것은 마치 그 사람이 걷는 길을 따라 걷는 것과도 같아서 그저 눈으로 빠르게 읽어가는 것과는 또 다른, 더 천천히 깊이 음미하게 되는 매력이 있어요.
작품이나 문장을 필사하면 고수와 하수가 들통 나 버립니다.
좋은 것 같아서 필사를 시작하니 구조가 허접하고 문장이 가벼워서 실망한 소설들도 있다니 정말 놀라웠죠! 왜 눈으로 읽으면 그게 잘 안 느껴질까요?
필사
베껴 씀
어떤 분들은 필사하는 시간은 아깝다,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하시는데 그건 실용적인 면에서 말씀하시는 것이고 필사의 애초 목적 자체가 어쩌면 정신적 쉼, 수양, 사색의 과정이라 그렇게까지 능률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소설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소설을 필사할 필요가 있다, 없다. 교수님들마다 의견은 달랐지만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손으로 쓰는 필사는 오래 걸려 컴퓨터 필타로 바꿨죠. 한글프로그램 열어놓고, 단편소설 한 편을 다 필타를 하고 보면 그 글의 구조가 완전히 제 눈에 훤히 보이면서 그 작가가 구조적 장치를 넣어둔 것들이 톡톡, 튀어나와요. 이 작가는 진짜구나, 이 작품은 진짜구나. 그전과는 달리 보이거나 호평이나 혹평을 받는 작품의 경우엔 완벽히 동감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인정하게 된 작품 중엔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있었어요. 필타로 전율을 느낀 천재작입니다.
요즘에는 필사하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게재하는 등의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의 유행치고는 아주 좋은 유행이라고 생각해요. 무심결에 좋은 문장을 따라 쓰며 좋은 기운을 제 안으로 들이고 있는 바람직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