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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샤인 Apr 28. 2024

내 나이 마흔에 찾아온 아이-1

D-DAY 35


우리 가족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내 나이, 노산의 나이로 분류되는 마흔이었다. 멘붕. 멘탈이 무너져 내렸다. 왜냐하면 나는 집에서 아이를 키울 여력이 현재로선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대표로 있는 4년 전 창업한 회사는 잘 성장하고 있다. 20, 30대를 내 일을 찾기 위해 수없이 실패하며 가난하게 살다가 이제 겨우 내 일을 찾았던 터였다.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고, 늘 미래에 대한 기대에 달떠있었다. 이제야 물을 만났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서 사치도 좀 부려보고, 저축도 하고, 그렇게 노후도 준비하고 완벽한 삶 속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한 틈에 둘째 아이가 배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낳아야 하는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 남편도 나처럼 잘 짜인 계획 안에서 일 욕심을 내며 매일을 계획대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존재는 당황스럽기 마찬가지였다. 이제 겨우 연초를 끊고, 전자담배로 바꾸며 건강도 챙기던 차였는데 다시 연초가 피우고 싶어서 힘들었다고 했다. 남편은 전자담배를 들고 자꾸만 밖으로 나갔다. 한숨인지 연기인지 모를 것이 그의 속을 돌아 뿜어져 나왔다. 나도 한숨을 지었다.


우리에겐 아이가 한 명 있다. 이제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혼자 등교와 하교를 할 수 있게 되어서 편해졌다 싶은 나이였다. 아이가 학교를 마치면 전화를 한다. 끝났다, 친구랑 놀다가 들어가도 되느냐, 무슨 간식을 사 먹어도 되느냐, 오늘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 여러 마디를 주고받고 나서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에 집중한다. 머릿속에선 아이가 무엇을 한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대충 동선과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띵동- 아이에게 문자가 들어온다. 메시지에는 집에 잘 도착했다는 인증사진이 찍혀있다. 그제야 나는 온전히 일에 집중한다.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아이도 잘 크고 있었고, 내 일도 잘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완벽했다.


그런 내 삶에 둘째 아이가 찾아왔다. 첫째 아이와 무려 9살 차이가 났다. 혼란스러웠다. 물론, 아이를 원했었다. 그건 딱 아이가 다섯 살까지였던 것 같다. 그 이상 생기지 않자 포기하는 마음이었다. 이제 낳으면 너무 힘들다. 내 일에도 걸림돌이 된다.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피임도 나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업무 스트레스로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지면서 배란기를 알 수가 없었을 때, 뜬금없이 생겼다.


뜬금이-

아이의 태명이다. 설마, 설마, 설마!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어진 것을 확인했지만 색이 진하지 않고 흐렸다. 그래서 너무 흐리다고 이건 믿을 수가 없다고 우리 부부는 다 알면서도 억지를 부렸다. 다음 날, 산부인과에 찾아가 검사를 하니 이제 막 아기집이 만들어져 아이는 배아 세포로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계획에 없으셨군요, 하시며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겠다고 하셨다. 누군가 다그치며 "아냐! 그건 안돼!"라고 해주기를 바랐던 걸까?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티슈를 한 장 건네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못하시겠는데요." 


살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오열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이날 산부인과에서의 오열이었다. 남편은 나와 함께 병원에 갔지만 도저히 진료실에는 들어갈 수가 없겠다고 로비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오열을 하며 나오는 나를 보며 무척이나 당황했고, 내가 꺽꺽거리며 우느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대신 데스크에서 결제를 했다. 내 어깨를 감싸며 병원을 나서며 남편은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이리도 우는지, 선생님께 핀잔을 들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그래서 아이가 안쓰러웠다. 환영받아야 할 아이가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어 엄마라는 사람의 뱃속에서 살아내려고 버티고 있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 누구도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한대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게 더 속상했다. 아이는, 그렇게 초음파 사진에 작은 점으로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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