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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샤인 Mar 17. 2023

거래처 한 곳을 정리했다

톤 앤 매너에 대하여



A업체는 전화하기 전부터 기분이 나빠지는 거래처였다. 2년째 거래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 업체에서 받는 물건은 참 예뻤다.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기분이 언짢았음에도 설설 기듯이 물건을 주문하고, 애원하듯이 작업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봐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값을 지불하는 거래처인데 물건을 사 오면서 굽신거리고는 뒷맛이 씁쓸했다.



어쩌겠어, 나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더럽고 치사해도 그러려니 하면 되지 뭐.


그렇게 지내왔다. 그런데 어제는 우리 고객이 그 회사의 물건을 골랐는데 비슷한 물건이 B업체에 있는 것을 알고 되도록 B업체 것으로 돌리려고 애를 썼다. B업체 사장님과 통화를 하면서 솔직히 까놓고 말했다. 다른 업체에서는 이만한 가격에 이런 사양을 제공한다. 사장님이 조금 더 비싸도 되니 이 사양을 맞춰줄 수 없느냐고. 하지만 B업체 사장님은 비슷한 사양도 맞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B업체에서 하려는 노력을 했으나 결론은 무리였고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A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소리가 내 머릿속에 돌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요란하게 다가왔다. 나도 예민해지고 있던 것이다. 연결음이 끝남과 동시에 무기력하면서 거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역시나 내가 아는 목소리. 아주 익숙한 톤. 기분 나쁜 매너. 아니, 회사 전화를 무슨 집에서 잠을 자다 받는 사람처럼 나지막이, 귀찮다는 듯이 받다니! 그곳은 사장도 없단 말인가? 사장님은 이런 고객 응대를 알까?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000인데요."

"네."

"네. xxx 상품 재고가 500개 정도 될까요?"

"네."

어디 계속 말해라는 투의 낮게 깔린 단답형이었다. 나는 그냥 본론만 한 문장으로 몰아서 다 물었다. 여러 번 나눠서 물으면 계속 저 단답을 들어야 하니까 나도 싫다. 여자는 업무가 익숙한 사람이어서 한 문장에 여러 개의 물음을 물었어도 핵심만 짤막하게 줄여서 대답했다.

"네. 되고요. 개당 20원 추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는 순간, 사내 게시판에 지했다. A거래처의 물건을 사이트에서 전부 내리고, 기존 구매하셨던 고객의 문의가 들어와도 다른 업체의 상품으로 유도하라고. 이제 우리 사이트에 그들의 예쁘고 멋진 물건이 사라져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구려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들의 물건이 올라온 사이트를 볼 때마다 내 기분이 구려지는 것보단 낫다.



사실 이렇게 제거한 거래처가 처음은 아니다. 두 번째다. 첫 번째 거래처 또한 비슷한 매너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일하는 직원이겠지만, 회사는 유기적인 곳이다. 직원들의 톤 앤 매너를 체크하지 못한 대표와 운영시스템의 책임 또한 크다. 무조건 진상을 부리는 고객에게도 친절하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기본은 유지하는 톤과 매너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A거래처와의 거래를 끊는 것을 알리는 공지에 솔직하게 적었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기분 나쁜 거래는 하고 싶지 않으며, 인간 대 인간으로 생각했을 때 기분 나쁜 인간은 절교하듯이 거래처 또한 다르지 않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반면교사를 삼아,



고객을 끊어내는 순간까지도
인간적, 상식적으로 대하는
톤 앤 매너를 갖자고.



나는 대표로서 직원에게 말한다.

고객이 힘들게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할 때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끌려다니지 말라고. 그 돈 안 벌어도 된다고. 하지만 짜증이 난다고 해서 내 기분대로 막 대하지 않고 상식적인 선에서 거래를 종료하라고. 그렇게 하면 고객은 거래가 끊어지더라도 훗날에 생각했을 때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그때에 본인이 한 잘못도 생각이 나면서 우리의 대처가 이해가 되는 순간이 올 거다. 그래서 적어도 그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이 떨어지진 않을 테다. 나는 앞으로 A업체가 있는 방향 쪽으로는(......). 그 업체는 모를 것이다. 예쁜 물건을 주문하는 다른 업체들이 이미 많을 테니. 우리 하나 주문이 끊어지는 것쯤이야 콧방귀도 안 뀌겠지만 언젠가는 테가 날 거라고 생각한다. 톤 앤 매너는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산은커녕 큰 빚덩어리를 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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