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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샤인 Aug 06. 2023

과로

내 스스로 인정할 만한 삶?





과로로 쓰러지는 걸 일회성으로, 아니.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겪어보니 굉장히 힘들다. 몸에 세포 면역력이 다 떨어졌다. 저혈압이 심각한 상황까지 와서 틈만 나면 빈혈에 온 세상이 빙빙 돈다. 한 번은 관자놀이 부분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핑, 하고 필라멘트가 끊기 듯한 느낌이 들며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의식을 잃으며 머리로 쓰러지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과 만약 그랬다면, 내 아이와 내 가족을 영영 못 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아찔하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때는 일요일이어서 가까운 병원 문을 닫은 지라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 병원에 갔다. 어지러움 증세를 이야기하고, 피검사를 했다. 그리곤 다음 날에 검사 결과를 안내받으러 갔다.






심각한 저혈압과 철분 부족, 비타민 D 부족.


어려운 용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나는 내 몸을 컴퓨터 앞에서 혹사 시켰다. 무려 4년이 가까운 기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처절하게 매달렸던 탓이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고, 내가 즐거웠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내가 들인 노력이 전혀 돌아오지 않는 경험 뿐이었는데, 창업한 나의 회사가 내가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전부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두 번의 기회는 놓쳐버린 것 같다고 늘 말했었다.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는데, 그건 꼭 잡아보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고 그게 마치 지금의 일을 만난 것 같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노라'고 미친듯이 일에 매달렸다. 그런 상황에서 내 몸의 컨디션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아프면 약 먹으면 된다. 쉴 시간이 어딨냐, 시간이 가고 있는데! 남들 일 할 때도 일하고, 남들 놀 때도 일해야 성공한다고 모질게도 몰아부쳤다. 그러는 사이 내 몸은 과로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온 몸에 근육이 빠진다고 느꼈지만 늘 책상에만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리니 크게 불편한 점이 없었다. 배가 고프다고 느꼈지만 믹스 커피 한잔 타서 마시면 또 금세 식욕을 잊었다. 생각하면 정말 나쁜 정신을 가진 주인이었다. 내 몸은 백기를 들었다. '과로' 상태가 된 것이다. 온 세상을 빙글빙글 돌리며 내 정신은 내게 말했다. 네가 쓴 일기장을 봐! 이룬 것 맞지?


내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말인 줄도 모르고.




과로로 쓰러져 봐야겠다. 그러면 내 스스로 인정할 만한 노력이겠지.




과로

그대로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 또는 그로 인해 피로가 지나쳐 생기는 현상



이젠 점심 때마다 밥을 잔뜩 먹고 햇볕에 나가 광합성을 한다. 남들은 더워 죽겠다는 날씨인데도 나는 땀 한방울 나지 않는다. 얼마나 몸이 곪았던 건지. 10분 이상을 손뼉을 치며 해를 받고 나면 몸에 기운이 도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들어 와 일을 한다. 일은 놓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일단 일을 하자. 그리고 퇴근을 하면 아예 일을 놔버린다. 평소 같으면 집에 가서도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이젠 몸을 좀 쉬게 해준다. 그리고 잘 안 되지만 생각도 일에서 분리해 버리려고 노력한다. 지친 뇌까지 가만히 두어야 진짜 쉼이다. 


소모해버린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채워진 채로도 한동안 더 채워줘야 건강하게 돌아간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삐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등한시 해왔던 시간들. 쓰러지진 않았지만 주저 앉아 봤으니 인정할 만한 노력이라고 칭찬한다. 그리고 함부로 무언가를 적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과로로 쓰러져야 인정하겠다는 스스로의 선전포고는 이제 지워버리고 다시 큼지막하게 수정하겠다.



허튼 짓 없이 잘 살았다.

마지막 기회같은 말에 촌스럽게 조바심 내지 말고, 매일 놓여지는 내 앞의 꽃길을 우아하게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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