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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Sep 06. 2020

가득함을 비워내는 작업

9월 1주의 수집

#01 - 박연준 산문집 <모월모일> 中


어떤 최선은 버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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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여정이라 생각했다. 채움이 있으면 비움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 나은 사람, 성공한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강의도 듣고 자격증 공부도 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열정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믿었건만. 나는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대청소를 했다. 대학 시절 공부했던 책들과 자료들을 버렸다. 안 읽는 책들, 첫 두 페이지만 쓰고 방치해버린 일기장도 버렸다. 유난히 꽉 채우기만 하던 8월이 지나고, 9월부터는 하나씩 비워나가기로 해 본다. 내면의 빈 공간에 좋은 감정들이 스며들면 좋겠다. 고지식한 마케팅 지식보다는, 가을의 향긋함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9월이 되길 바란다.



#02 - 책 <좋아하는 철학자의 문장 하나쯤>에서 찾은 한나 아렌트의 문장


 빠른 속도로 찾아드는 행운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반대로 불행이 찾아드는 형태는 마치 기어오는 것과 같아서, 항상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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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없었던 8월의 시기를 '불행'으로 기록하려는 찰나, 한나 아렌트의 문장이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불행은 언제나 나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름의 시간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겨도 보다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겠다는 강한 마음이 자라날 수 있었다.



#03 - 김버금 작가의 문토 인터뷰 中


돌이켜보면 제게 의미 있었던 일들 중 8할은 '그냥' 좋아서 했던 일들이었어요. ‘그냥’ 좋아서 만났던 사람, ‘그냥’ 좋아서 갔던 여행, ‘그냥’ 좋아서 했던 글쓰기... 이제는 ‘그냥’의 힘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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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토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김버금 작가의 글쓰기 레슨에 관심이 있어 구독하던 차에 마침 김버금 작가의 인터뷰가 도착해서 읽었다. '그냥'의 힘을 믿는다는 말이 좋았다. 나는 때때로 세상이 우리에게 '이유'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에서 전공을 고를 때, 직장에서 직무를 고를 때, 그 영화가 왜 좋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왜 좋아하는지.. 나는 사실 이 물음에 답하는 우리의 대답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욕구의 작용, 말 그대로 '그냥' 좋았을 뿐이지 않았을까.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은 논리를 추구하는 서양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물음들에 피곤해하지 말고, 이제는 당당하게 '그냥' 좋다고 말해보자.



#04 - Mac Miller의 말


사람들이 빨리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보는 대신에 얼마나 더 멀리 가야 하는지를 보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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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장을 나는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나아가자' 보다는, '지금까지 열심히 한 자신을 격려해줘'라는 의미로 읽었다. 평소에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을 머나먼 미래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해온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서툴다. 20대 중반- 열심히 달려온 나 자신을 다독여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해 준 문장이다. 고인이 된 맥 밀러의 목소리가 그립다.



#05 - 영화 <싱 스트리트>의 대사 中


절대 적당히 해선 안 돼,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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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싱 스트리트>를 보면서 주인공보다는 주인공의 형인 브랜든(잭 레이너)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했다. 본인은 꿈을 포기해야 했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생을 응원하며 뿌듯하게 바라보는 그가 애잔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숱한 꿈을 관두며 살아온 내 삶의 순간들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절대 적당히 해선 안 된다는 그의 대사는 무게가 있었다. 정말 즐겁게, 최선을 다해서 음악을 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해 기분이 좋았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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