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주의 수집
#01
3650가지 하늘을 만난 10년
녹색연합을 후원하고 있다. 정기후원을 하면 때때로 읽을거리를 보내준다. 저번에 받은 잡지엔 매일 하늘을 찍는 사진작가 엄효용 님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인터뷰 내용 중, 그가 하늘 사진을 찍은 10년의 세월을 '3650가지 하늘'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참 귀여웠다. 평범한 나날도 어떻게 말해지냐에 따라 특별해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월요병' 말고 나만의 월요일을 위한 이름을 지어봐야겠다. (그래도 월요일은 힘들다)
#02
글을 쓴다는 건 삶을 두 번 사는 거에요.
잡지 <AROUND>에 실린 장석주 시인의 말이다. 지금 현재 내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삶이 첫 번째 삶이라면, 그 감각에 낱말을 붙여 글로써 재가공한다면 그것은 두 번째 삶이다. 이 표현과 마주하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 한 가지가 더 늘어난 느낌이다. 한번뿐인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제 내 인생은 두 번인 셈이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은 즐겁다. 인생은 즐거우니까.
#03
3÷1 = 3. 일로 삶을 나누어도 삶.
최근에 일기에 이런 말을 적었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삶 가운데 일이 함께 기록되길 바란다'. 삶과 일을 분리한다면 일 하는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일도 내가 살아가는 과정 중 하나이니 소중하게 여기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잡지 <컨셉진> 53호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의 이 구구절절한 문장을 적절한 카피로 요약해놓은 것이다! 출처는 배민이다. "3÷1 = 3. 일로 삶을 나누어도 삶." 좋은 카피는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 카피와 마주하고 '재밌다'에 이어서 '그 센스가 부럽다'는 감정으로 이어졌다. 나도 카피를 잘 쓰고 싶다! 내일은 회사에서 좋은 카피를 쓸 수 있었으면 한다.
#04
같은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
은유 작가의 이 문장을 읽고 가만히 생각했다. 나도 이런 경험을 했었을까. 그렇다. 꼭 시간차가 길지 않더라도, 같은 책을 두 번째 읽으면 처음 그 책을 접했을 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정말 좋아한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군대에서였다. 그 때의 내가 책을 읽고 좋다고 느껴서 고이 접어놓은 책 꼭지를 다시 발견할 때면 소소한 재미가 있다. 맞아. 그 때는 마음이 힘들어서 이 문장을 좋아했었지, 하곤 한다. 책을 넘기며 밑줄 친 문장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다. 온전히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05
책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독서를 취미로 가지기 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는 훈데르트바서의 충언을 몰랐던 나는 모든 것을 직선적으로 판단했다. Yes or No. 어떤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너무 쉽게 판단했다. 책을 접하고 나서는, 스스로가 좀 더 입체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 매끈한 얼음 바다를 깨고, 깊은 심연 속으로 책은 나를 이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저 밑에 있는 걸 알기에, 이제는 현상을 판단하기보다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을 격언으로 삼는다. 모든 사람의 내면은 바다처럼 깊고 넓다. 함부로 그 속을 짐작하려는 일은 관두고 싶다. 참, 이 문장은 카프카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