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주의 수집
#01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봐야 잡초를 뽑고 작물을 가꿀 수 있다.
<1미터 개인의 간격>
한동안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있었다. 외로움, 불안, 지루함 따위의 것들.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감정들로 가득한 내 모습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착각하고 있었으니까. 일시적인 오류라고 착각하고 그 감정들을 방치한 탓에, 상태는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홍대선 작가의 문장과 마주했다.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현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의 모습도 온전한 나야, 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 글쓰기는 그 대화의 한 방법이다. 내일은 더 나아질 나를 위해, 현재의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인다.
#02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
<아시아나 광고 카피>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 갤러리를 뒤적거린다. 엄지 손가락이 몇 번 왔다갔다 할 때 쯤, 갑작스러 어떤 사진에 눈길이 멈춘다. 작년 크리스마스, 런던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그래, 이 때 재밌었지. 작년 나와 친구들은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12월 25일에 맞춰 영국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때는 몰랐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걸... 텅 빈 런던 거리를 열심히 쏘다녔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가족들과 보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안 탓에, 우리는 조금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즐거웠다. 돌이켜보면 우연으로 가득한 여행일수록 좋은 추억으로 남겨지는 걸 느낀다. 예측 불가능한 여행.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 계획이 틀어져도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여행. 이것은 우리의 일상과는 정 반대다. 일상은 우연을 멀리한다. 중요한 시험을 준비할 때 우연에 기대면 큰일난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이 미덕이다. 그와 반대로 여행은 정해진 목표가 없다. 그저 과정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여행이다. 우연은 그 과정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새삼 슬프다. 여행이 우리를 떠난 지금, 우리는 어디서 우연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아시아나의 카피를 곱씹으며 고민에 빠져본다.
#03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바깥은 여름>
9월을 생각한다. 인턴 3개월차. 허둥대며 실수도 많고 꽤나 지쳤던 나날들. 계획했던 일들을 해내지 못해 후회만 반복했던 주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헤매이던 밤. 10월의 도입에서 9월은 참 고단했구나, 하고 돌이켜본다. 새삼 내가 대견하다. 모난 감정을 안고 있었음에도 잘 버텨왔구나. 사소한 일상이 쌓인 9월을 지나, 엇비슷한 내일을 맞이할 10월 1일의 밤에 하나의 계절을 기록한다.
#04
아마 10년 후에도 나는 계속 아이처럼 주변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며 살 것 같다. 나의 삶이 계속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
<JOBS : 소설가> 마크 레비 인터뷰 中
어른이 되어가며 잃지 말자고 다짐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호기심' 이다. 호기심을 풀어 쓰면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는 마음' 일까. 어른은 아는 체 하기 쉽다.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경험을 전부로 믿는 경향이 강해진다. 나는 그 부분을 경계한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꼭 간직하고 싶다! 김진애 박사님은 (현재 국회의원) <알쓸신잡 3>에서 '안 해본 것을 해보는 것'이 인생의 모토라고 이야기했다. 안 해본 것을 해봤다고 착각하지 말자. 그리고 궁금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꼭 도전하자.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마음을 잃지 말자. 일기장처럼 여기에 꾹꾹 눌러쓴다.
#05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는 참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침묵을 나눌 수 있는 사이다. 이런 침묵은 몇몇 가깝고 특별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의 한 형태다.
<말하기를 말하기>
예전에는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대화의 빈틈이 생기면 어색해서 견디질 못했다. 침묵의 공백을 깨기 위해 억지로 뱉은 낱말들을 나중에 후회하기도 하면서. 요즘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침묵을 즐긴다. 대화와 대화 사이, 침묵의 빈 공간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조급해하기 보다는 거기에서 나오는 묘한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인다. 때로는 지나치게 꽉 차있는 언어의 주고받음에 지쳐 자발적으로 침묵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러울수록 상대방을 더욱 친밀하게 느낀다. 그 만남이 짧건 오래되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