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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Oct 11. 2020

행복을 전제로, 슬픔의 정도를 계산했다

10월 2주의 수집

#01

슬픔은 기쁨의 과도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일기에는 주로 그 날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한다. 기쁨, 만족감, 슬픔, 우울함, 후회 따위의 것들이 뒤섞인다. 슬픔을 기록하는 이유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우울하고 힘든 나의 상태를 글로 풀어냄으로써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문제점을 발견하면 후에 해결하여 긍정적인 상태로 다시 회복해나가자는, 일종의 '다짐'과 같은 형태로 일기를 쓰곤 한다.


 오늘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수입을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벌었을 때'를 기준으로 두게 된다고 친구는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되려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보통 우리는 즐겁고 긍정적인 상태를 '정상'으로, 슬프거나 우울한 상태를 '비정상'으로 두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우울함은 제거의 대상, 회복의 대상이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체로 힘들고 우울하다. 삶에서 항상 곁에서 끈질기게 따라붙을 우울함을 억지로 뗴어내려 봤자, 우울함은 금새 거머리처럼 다시 따라붙을 뿐이다. 우리는 이 우울함에 관대할 필요가 있다. 우울한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이러한 화해로부터, 우리는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우울하지만, 행복을 받아들이는 나. 행복과 우울의 상호공존. 우울한 나 자신을 인정하면서, 미래를 헤쳐나가는 용기있는 나.    



#02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많게건 적게건 미지의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자. 타오르는 불꽃 하나와 벌판의 나무 한 그루를 묘사하려면, 그 불꽃과 나무가 우리에게 다른 어떤 나무, 다른 어떤 불꽃과 더이상 닮지 않을 때까지 그것들 앞에서 떠나지 말자.

<『피에르와 장』서문 中 발췌, 모파상>


 예전에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는 각자가 작은 우주이다'라는 문장을 접하고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그 후로 나는 사람을 만나면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버리는 버릇을 고쳐나가고 있다. <알쓸신잡>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당장 우리 눈 앞에 있는 컵의 뒷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데, 한 사람의 내면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 한낱 미물이라도 다르게 보기 위해 노력해본다. 각각의 생김새, 그것이 타자와 맺는 관계, 혹은 그것이 가질 특별한 의미 등을 상상한다. 그러다보면 나의 감정이 풍부해지는 걸 느낀다. 지금 내 곁엔 반쯤 마신 블랑 맥주 한 캔이 있다. 이 맥주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 올해 마지막 연휴의 끝에서, 힘들어하지 말라고, 앞으로 즐거운 일만 가득할 거라고- 달달한 향을 품은 블랑 맥주 한 모금이 나를 다독여준다. 덕분에 위로를 받았다. 내일 출근날인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



#03

예술은 시간의 들판에서 뛰어노는 상상력이다. 당신의 자아가 마음껏 뛰어놀게 내버려 두자.

<아티스트 웨이>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내 마음속 검열관'을 말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있지만, 이 예술가의 잠재력을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건 안 될 거야', '이건 인정받지 못할 거야', '남들은 이런 걸 절대 하지 않는 걸' 라며 자조섞인 말투로 창조적인 활동을 단념할 때, 검열관은 우리 내면의 자유로운 예술가를 탄압한다.


 방송인 타일러는 우리 모두가 '박스'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 '박스'에서 벗어날 때 우리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검열관 그리고 박스. 26살- 취업의 기로에 선 시점에서 '평범한 삶', '보통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과연 세상이 정해놓은 보통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좋은 책을 읽고, 의미 깊은 영화를 보면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득 채우지만, 거기로부터 물러나면 다시 보통의 세상과 마주한다. 내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을 위해서 '보통'에서 얼만큼 물러나면 좋을지, 결국엔 '보통'에 안주하며 살아가게 될 것인지, 고민이 많이 되는 시점이다.



#04

 일 잘하는 사람들은 '왜'를 먼저 확인합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지 분명히 합니다. '왜'와 '목표'는 이어져 있습니다. '왜'를 찾고 '목표'를 알고 공감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모두가 '왜' 하는지 공감하고 일할 때 비로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마케터의 일>


 마케팅 일을 배우면서 특히 '목표'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왜?'라는 질문에 공감할 수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따라갔고, 목표가 불확실해 공감하기 어려운 업무들을 맡았을 때에는 업무집중도가 떨어지곤 했다. 크고 작은 기획- 작은 기획이라면 카피 한 줄을 쓰는 일에서도, 목표가 분명한 것이 좋다. 어떤 고객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지, 이 문장을 통해 누구를 기쁘게 하고 싶은지, 그 목적을 상기하며 카피를 쓸 때 좋은 카피가 나온다. '왜?'는 어쩌면 마케터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대한 넓은 관심, 작은 것에도 '왜?'라고 물어보는 호기심이 곧 나와 다른 고객을 이해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05

 막 십대로 들어선 나는 황량한 아파트숲에서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어떻게 해야 마음이라는 것을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말, 공감이 많이 된다. 행복한 삶, 좋은 인생이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는 모르면서, 그러한 삶을 그리워한다. 행복이란 감정을 그리워하지만, 어떨 때 행복한 지 도통 알기가 어렵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은 채워지지만, 최대치로 말하자면 10 중에 7할 정도까지일 뿐이다. 10 중 10할을 채우는 행복은 어디엔가 존재할 것 같은 막연한 상상. 그 확신이 내 그리움을 만들었나 보다. 언젠가 손에 잡힐 행복을 그리워하며 오늘은 5할 정도의 행복으로 길었던 연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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