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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Oct 25. 2020

좋아하는 척은 다 들키고 마니까요

10월 4주의 수집

#01

놀라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능력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놀라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과

놀랄 만한 대상에게조차도 심드렁한 사람의 성장 그래프는

시간이 갈수록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


-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회사에서 콘텐츠 업무를 할 때 때때로 SNS 채널에 올라갈 문구를 작성한다. 소구하고 싶은 회사의 서비스를 은근히 녹이면서 트렌디한 문장을 쓰는 것은 나름대로 쉽지 않다. 거기에다 브랜드에 대한 애정까지 자연스럽게 묻어나야만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부분이 제일 어렵다. 좋아하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도 좋아하지 않는데 '좋은 척'하고 글을 써 봤자 읽는 사람은 다 안다. 당신, 억지로 쓰고 있군요!


 그래서 마케터는 감정이 풍부해야 한다. 작은 것에도 커다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꼭 즐거움이 아니어도 괜찮다. 슬픔, 두려움, 도망가고 싶은 마음, 저걸 꼭 내 손에 넣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등.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마케터의 일이라면, 그 이전에 그 사람들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놀라움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태도를 잘 유지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일은 월요일이기에.. 다른 면에서 놀라움을 느낀다. 벌써 주말이 끝났다니!



#02

제가 살면서 어떤 것에 흥미를 느낀 게 처음이었어요.

좋아할 만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났고,

이걸 위해 시간을 충분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BEAR 매거진 <CURRY> 노래 작가 인터뷰 中


 내가 자신있게 '좋아합니다' 하고 외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음악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음악 취향을 따라갔다. 아버지는 외국 팝 음악을 좋아했다. 지하철의 노상 상인들이 파는 '올드 팝 TOP 100' 따위의 CD를 사와서 듣곤 하셨는데, 그 탓에 나는 초등학생 시절 원더걸스의 텔미보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나 ABBA의 댄싱 퀸을 좋아한 꼬마였다. 중학교 때는 친구가 들려준 닥터 드레의 'Next Episode'를 듣고 강하게 충격을 먹은 뒤 힙합에 빠져버렸다. 대학교에 와서 힙합 동아리 회장까지 해버렸으니, 그 친구는 내 인생에서 엄청난 영향을 준 셈이다.


 군대를 다녀온 후로는 책에 빠졌다. 평생 읽지도 않던 소설책을 한달에 몇 권씩 읽고 있는 내 모습이 가끔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읽고 나서 뭉클함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독서가 주는 그 몰입감이 좋다. 책은 한 권 한 권이 세계라는 워즈워스의 말처럼, 책을 읽으며 내가 몰랐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는 그 경험도 좋다. 내년에는 출판사로 취업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인용한 문장처럼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충분히' 쓰게 되는 것이니, 그것 또한 좋은 인생이 될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이다.



#03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 <오래 준비해온 대답>


 우리는 보통 늙음을 나이로 구분한다. 혹은 외모로 늙음을 말하기도 한다. 머리가 희거나, 주름이 자글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다른 방식으로 늙음을 이야기한다. 세상에 대해 더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 과정을 늙음으로 규정한다. 우리가 늘상 생각하는 나이와 외모는 물리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태도를 말했다. 삶이 궁금하지 않을 때, 다시 말하면 인생에 관해 모든 걸 다 알아버렸다고 자만할 때 우리의 마음은 늙음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내 마음속, '이미 알아버렸다'고 정해버린 것, 그런 고정관념들로 내 삶이 채워지지 않았는지 되새기게 된다. 호기심은 모르는 것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모름을 사랑하고, 앎을 경계하자. 김영하 작가의 좋은 문장을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었다.



#04

현기증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인식하지도 못했던 광경이

갑자기 빛을 비춘 듯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 <가만한 나날>


 어제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만났다. 모두 하나같이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이야기했다. 대학교 신입생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취업 얘기를 하게 되었다니...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보다는 시간에 내 몸을 맡겨버렸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문득, 나중에 정말 다 지쳐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때때로 한다. 일단 사는 대로 살긴 했는데,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가. 어린 시절 바랬던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여기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할까. 무력감이 파도처럼 휩쓰는 시기가 분명 다가올 것이다. 미래의 번아웃을 잘 이겨내기 위해선, 지금 바쁘더라도 꾸준히 내 감정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의도적으로 멈출 수 있는, 그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05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당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당선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하며

역시나 안 되었다는 것은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중대하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남에게 이해될 수 없다는 것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상실감과

오기 또한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알게 해주니까.


- <혼자가 혼자에게>


 내년, 수많은 떨어짐을 경험하게 될 미래의 나에게 필요한 문장이다. 간절한 마음이 남에게 언제나 도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실패를 통해 절절하게 깨닫고, 그것을 양분으로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는 말. 그래서 떨어짐은 나아감을 위한 초석이라는, 이병률 시인이 남긴 위로의 단문이다. 내년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많은 기업에서 탈락을 경험할 내가 꼭 저 문장들을 가슴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떨어짐 속에서도 용기를 얻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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