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살기 그림일기] 아침의 영감

하루의 시작 .아침

by 소형

사진의 한계인지 이래서 사진은 사실적이지 않아...

창밖을 찍으면 방이 어둡게 나오는데 사실 방안이 엄청 밝다.


혼자 사는 저는 저녁이 있는 삶보다 아침이 있는 삶이 더 좋아요.

회사 다닐 때는 겨울에 해가 짧아지면 컴컴할 때 나가서 컴컴할 때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어요.

아침을 여유롭게 보내며 사색하는 사치가 있는 지금에 감사합니다.


전에 써둔 아침에 관한 에세이 같이 올려요~꽤 지난거라 다시 읽으니 저도 어색하네요 ㅋㅋ




아침

“나는 아침에 웃으면서 일어나지.”

“네? 저는 욕하면서 일어나는데 선생님은 정말 저랑 다른 거 같아요.”

학원 회식자리에서 아침에 알람 설정을 하는 방법에 대한 화제가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고역이라는 선생님들에게는 웃으면서 일어난다는 나의 말이 좀 가식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의 시작인 아침은 나에게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의식의 저편에서 가녀린 멜로디가 들려온다. 조금씩 정신이 깨어나고 몸에 닿는 까슬한 침대 시트를 느낀다. 시원한 감촉이 좋아 여름마다 깔아두는 하얀 시트를 비비적거리며 다리와 팔을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켠다. 알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실제로 점점 커지도록 설정해둔 알람인데 동백꽃이 떨어지듯 서둘러 현실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말려있던 나팔꽃이 벌어지듯 부스스... 서서히 적응하게 해준다. 드디어 눈을 뜨면 눈안 가득 환한 방안이 들어온다. 손을 뻗어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니 7시 30분.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면 방 한쪽 면을 가득 차지한 전면 유리 너머로 오늘의 날씨가 상영 중이다. 아직 낮게 깔려있는 주홍빛 햇살을 받은 건물들이 아침의 연푸른 하늘 아래에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주변의 주택가에 비하여 4층인 나의 집은 높아서 홀로 하늘에 떠있는 느낌이다.

일어나 앉아, 덮었던 이불의 양 모서리를 잡고 포개어 반듯하게 게고 베개와 함께 가지런하게 쌓아둔다. 구겨진 하얀 시트도 당겨 펴주고 그 위에 떨어진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집어 쓰레기통에 넣으며 살금 거실로 나간다.

전기포트에 수돗물을 가득 담아 올려두고 거실과 붙은 부엌 개수대 앞에서 양치질을 시작한다. 뒤에서 서서히 물 끓는 소리가 커진다. 개수대 앞 설거지 다이에는 전날 밤 씻어둔 컵이 하나,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그릇과 가위가 말라있다. 노란 머그컵을 제외하고 그릇들은 찬장으로 수저와 가위는 서랍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찬물을 틀어 가글을 하니 입안에 상쾌한 민트향이 퍼진다. 틀어진 물에 손을 씻고 대충 물세 수를 한다. 커지던 물 끓는 소리는 파르르 끓다가 탁하고 돌아오는 버튼 소리와 함께 점점 잤아든다. 냉동실에서 각 얼음 다섯 개를 꺼낸다. 아직 젖은 손에 얼음들이 달라붙어온다. 머그컵에 얼음을 담아두고 끓인 물을 붓는다. 찬 얼음이 물에 녹으며 아지랑이 같은 물무늬가 생겨난다. 얼음이 녹으면 마시기 딱 좋은 온도가 된다. 따듯한 물을 마시면 식도를 타고 뜨끈한 기운이 내려가서 뱃속에 따스하게 퍼져나간다. 밤사이 잠든 속이 깨어나는 것 같다. 매일 아침 습관처럼 마시는 물이지만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밤사이 목이 말랐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단숨에 꿀꺽꿀꺽 마시고 참았던 숨을 하아 하고 내뿜는다. 빨랫대에 티셔츠 하나와 손수건, 양말과 속옷이 바삭하게 말라있다. 세탁기의 그 어둡고 습한 동굴에 손을 넣기 싫어해서 옷이 가벼운 여름에는 매일 밤 손빨래를 해서 널어두곤 한다. 건조된 옷가지를 선채로 차곡차곡 갠다. 예전에는 바닥에 놓고 손으로 다리듯 잘 펴서갯는데 여러 번 개면서 옷이 내 말을 잘 듣게 길이 들었는지 비스듬히 몸 앞에 걸쳐두고 개도 마치 형상기억합금처럼 접혀있던 과거로 알아서 잘 돌아간다.

미닫이 옷장에 옷을 넣어두고 고요한 집안을 둘러본다. 밝고 정돈된 이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동향으로 난 거실의 둥근 창을 가로질러 햇빛이 들어온다. 이 하얀 햇살의 동그라미는 해가 낮은 이른 아침에는 맞은편 벽 중앙에 걸려있다가 시간이 가며 거실 바닥 중앙으로 이동해오고 오전이 채 가기 전에 쓱 사라져 버린다. 그야말로 해 시계이다. 아직 벽과 바닥 사이에 걸쳐있는 햇살의 동그라미 안에 이따금 먼지 오라기가 하얗게 빛나며 느리게 이동한다. 살금살금 밀대 걸레에 부직포를 건다. 먼지라는 녀석들은 사람보다 늦게 잠들어 사람보다 늦게 일어난다. 아침은 밤사이 바닥에 내려와 잠든 먼지 고 녀석들을 싹 잡아챌 좋은 기회다. 깨어나 사방에 날아다니기 전에 부직포를 지그재그로 밀며 남김 없이 잡아챈다. 방 2개와 거실의 먼지들을 수확하는데 20분 남짓, 수확이 끝나면 꼭 부직포를 뒤집어 그날의 수확량을 확인한다. 잔뜩 묻어난 먼지를 보면 이렇게 더러웠다니!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만큼 깨끗해진 거 같아 기분이 좋다. 오늘도 만선의 기쁨을 안고 흡족하게 거실을 퇴근한다. 아침의 집안일은 이것으로 마무리이다. 살림에는 최대한 적은 시간을 쓰려고 하지만 사실 난 살림이 좋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많지만 어쨌든 지금 여기 우리를 실질적으로 살려두는 것은 살림이다. 잘 사는 것이 돈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 사는 것은 자기 살림을 잘하는 것이다.

8시.적당하게 한김 빠진 포트의 물을 다시 머그에 붓고 커피를 탄다. 방안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는다. 종이 두 장을 펴고 아무거나 30분 동안 쉬지 않고 적는 것은 끊길 듯 말 듯 이어오고 있는 나의 오랜 습관이다. 글을 쓴다기 보다 아무 글씨나 쓰는 것인데 요즘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여러모로 이 습관의 도움을 받고 있어서 정말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 머그잔에 코를 가까이 대고 커피향을 맡는다. 고소하고 시큼한 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상 앞 창밖 풍경을 한번 쳐다보고 오늘도 나의 영혼을 살피는 살림 같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현제를 뜻하는 영어단어는 present 즉,선물이라는 뜻이다. 하루는 선물과도 같고 그 선물상자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선물이라고 마냥 기분 좋은 선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무서운 괴물도, 더러운 오물도, 그리고 예쁘지만 맘에 들지 않는 것도, 비싸지만 시한폭탄 같은 것도 들어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선물의 포장을 푸는 것은 정말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아침의 일과가 그 포장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날의 선물이 나를 우울하게 하더라도 전날의 선물이 나를 좌절하게 하더라도 그 기분은 싹 털어 집 밖으로 내보내고 매일 아침 소박한 일과를 반복한다. 오늘의 선물 안에는 어제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제의 선물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무엇일까.

나는 매일 크리스마스 아침의 설레는 기분으로 오늘의 선물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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