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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형 Jun 06. 2020

[그림일기, 에세이] 책읽기의 재미

헬렌켈러

                                                                                                

어릴 때 책 읽는 것 참 좋아했는데...집에 장난감이 없어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책이었다.

동화책도 없었고 친척이 두고 간 삭아가는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는데 읽은 횟수를 책등에 표시하며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읽은 책은 펄벅의 대지랑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였다.

읽다 포기한 건 죄와 벌. 러시아 이름은 계속 바뀌니까 이해가 안갔다.집에 읽을 책이 없어지자 매주 세 권씩 시립도서관에 빌리러 갔다. 그렇게 신기한 세계 각국과 문화들, 인물들을 동경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때는 대부분 만화책에 빠져 지내고 고등학교 때는 책을 안 읽다가 대학교 때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심리학, 철학 책을 읽으며 그 안에 뭔가 나를 편하게 해줄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다닌 거 같다. 꽤 도움을 받기도 했다.그 작은 책 속에. 고작 1.2만 원 하는 책 속에 참 복잡하고 다양한 즐거움이 포개져 있다.

요즘은 다시 소설에 푹 빠져서 읽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에피소드를 쓴 에세이가 있어서 함께 올린다.                                      


헬렌 켈러_김소형   


한 사람의 삶을 도형으로 그리면 어떤 모양일까? 성장하는 계단형? 목적지를 찾는 미로? 돌고 도는 원형? 나의 경우 기존의 자신을 깨고 나오며 점점 부피를 넓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같았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껍질을 깨는 계기가 된 것은 헬렌 켈러 사건이었다.

얼마 전 엄마의 옛날 가계부를 펼치는데 무언가 갈피에서 후드득 떨어진다. 큼직한 네 잎 클로버들이 누렇게 말라 20개가 넘게 떨어져 있다.“우와 엄마 이게 다 뭐야. 어떻게 네 잎 클로버를 이렇게 많이 찾았어?” “그거 다 네가 찾아온 거잖아.” 아침에 나간 애가 오후 되도록 안 보여 찾아보니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더란다. 그렇게 엄마에게 줄 네 잎 클로버를 하루 종일 찾는 아이. 아마 그 당시 네 잎 클로버의 의미에 대해 처음 들었을 것이다. 이렇듯 토끼 구름 나비 구름~이라는 동요를 알게 된 날에는 몇 시간이고 누워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눈 결정의 모양이 전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날에는 눈 오는 밖에 쭈그리고 앉아 눈 결정만 하염없이 보았다. 애벌레가 배춧잎을 먹는 것을 몇 시간이고 보고 나팔꽃이 피는 것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당시 동네분들의 말을 빌자면 좀 특이한 애. 자폐증을 의심하게 했던 울지도 웃지도 않는 6살. 나이에 비해 조금 늦된 아이였을 것이다.

초록 마당이 있던 집을 떠나 가양동으로 간 것이 7살 때였다. 2층 양옥집의 반지하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이가 한 명이라고 속였기 때문에 그나마 그 방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이사하는 날 동생은 엄마와 함께 먼저 들어갔고 언니와 나는 밤이 되길 기다려 엄마가 몰래 열어둔 대문 틈으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별나다 싶겠지만 산아 제한 정책이 있던 때라 애들이 많은 집은 죄인 취급을 당할 때였다. 택시를 탈 때도 목욕탕을 갈 때도 언니와 나는 없는 척하는데 익숙했다. 이사 후 한동안은 조용히 숨어 지냈는데 예전집에서 소리 지르고 놀던 애들을 조용히 하라고 다그쳐야 했던 엄마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숨어 지내는 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해 마당에서 주인아주머니와 딱 마주쳐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들어와 살고 있으니 어쩌랴. 주인집 아주머니도 야박한 분은 아니었고 그 집도 우리처럼 아이가 3명이라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셨는지 우리는 그 집에서 2년 동안 살수 있었다. 5식구가 다닥다닥 붙어 자야 했고 애들 잠버릇이 고약한 날에는 아빠의 한쪽 다리는 썰렁한 부엌 타일 위로 쫓겨나야 했다.

주인집 아이들 세명은 우리 삼남매보다 꼭 한 살씩 많았다. 첫째 선영이 언니는 3학년으로 전교 1등이었고 둘째 선미언니는 두 살어린 1학년으로 피아노를 잘쳤다. 셋째 민정이는 6살로 내 남동생보다 한 살이 많았는데 둘이 귀엽게 잘 놀다가 싸우기라도 하는 날에는 꼭“여기 우리집이야 나가!”라고 말해서 동생을 서럽게 하는 얄미운 꼬맹이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자기 세계에 갇혀지냈고 엄마 아빠는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맞벌이부부로 무언가를 가르쳐 주기에는 여유가 부족했다.

학구열이 대단했던 동네여서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와 남자아이 한 명 빼고는 전부 한글을 알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 둘을 앞자리에 같이 앉히고 수업이 끝나면 계단참에서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몇 주 후 한글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교과서는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교과서에는 순이야 안녕? 철수야 안녕? 하는 해괴한 상황만 있었으니 공부에는 별 흥미를 못 느꼈다. 책은 비쌌고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어서 집에는 교과서뿐 동화책은 한 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엄마가 하시던 학교 앞 떡볶이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들어서니 창고 쪽에 책들이 쌓여있었다. 아마도 대청소를 해서 버릴 물건들을 쌓아놓은 것 같았다. 그때 창고에 몰래 들어가 뒤적거리다 발견한 책이 헬렌 캘러였다. 하드커버에 안에는 수채화와 펜 선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좋아했던 나는 멋진 그림에 매혹되어 떨리는 심정으로 책을 가방 안에 몰래 숨겼다. 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 옥상 시멘트 난간에 등을 기대고 읽기 시작했다. 읽는 속도가 느렸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에 빠져들었다. 글씨를 읽으면 재미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실감한 첫 기억이었다. 삼중고의 헬렌 켈러가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마음을 열어가는 이야기. 나는 이 경이로운 작품에 푹 빠져들었다. 반쯤 읽었을까. 그때 갑자기 눈앞에서 책이 휙 사라졌다, 고개를 든 내 앞에는 선미 언니가 책을 한 손에 들고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내 거야! 너 이거 훔쳤지!”언니가 집에 없는 사이에 짐을 정리했는지 언니는 그 책이 버려진 걸 모르고 있었다. 피아노 학원 마치고 돌아온 언니는 2층 방 창문을 열면 보이는 옥상에서 자기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창문을 넘어온 것이었다. 억울한 한편 틀린 말은 아니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 책의 뒤 내용이 너무나 궁금했던 나는 엉엉 울면서 “언니 나 좀만 더 읽을게 좀만~”하고 사정했지만 누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보면 그것이 더 귀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선미 언니의 손을 떠난 책은 내 팔이 닿지 않는 6칸 책장의 맨 위에 꽂혀졌고 그 뒷이야기는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훔쳐본 책이었기 때문에 어린 맘에 겁이 나 어른들에게 말도 하지 못했다. 언니의 기억에서 그 책은 금방 잊혔겠지만 나는 그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위치도 바뀌지 않고 같은 자리에 꽂힌 빨강 글씨의 헬렌 켈러 책 등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끝나지 않은 뒷이야기를 궁금해해야 했다.

다 못 읽은 헬렌 켈러 덕인지 삼중고에서 헬렌을 끄집어낸 설리번 선생님의 힘인지 목마른 사람이 우물 찾듯 나는 자기만의 세상을 깨고 책을 찾아 학교 도서관을 뒤지게 되었다. 똑같은 책은 못 찾았지만 그 후 수많은 이야기책들 속에서 옷 갖 세상을 탐험할 수 있었다. 톰소여와 함께 울타리를 페인트칠하고, 제인 에어와 함께 붉은 방에 갇혀 두려워했으며, 걸리버를 먹이려고 빵을 나르는 소인이 되기도 하고, 로빈슨 크루소와 섬을 탐험하기도 했다. 진저에일이니 마들렌이니 하는 외국 음식의 맛을 상상하며 입맛 다셨고, 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세틴이나 공단의 드레스를 상상하며 가슴 뛰었다. 책은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부끄러움과 자부심, 희생, 용기와 우정 사랑. 이국의 문화들, 나무와 풀의 이름, 많은 것을 책 속에서 배웠다. 나를 부끄럽고 비굴하게 했던 헬렌 켈러 사건은 내 세계를 넓히는 계기가 되어 어린 추억 속의 반짝이는 보석으로 간직되었다. 이후 문학의 세계는 내가 다시 깨고 나와야 할 안전한 가상의 세계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꽤 후의 일이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스스로 한계 지은 부분은 분명 있을 것이다. 언제 또 무언가가 나를 모욕하며 비난하더라도 그것이 헬렌 켈러라고 생각하고 욕심 가는 곳으로 손을 뻗을 수 있기를 한계를 깨부술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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