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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형 Jul 16. 2020

[일상, 그림일기] 집구석 여행하기

나를 낯설게 보기



우리가 10년 이상 산 곳에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우리는 습관화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드 메스트르는 우리의 이런 수동성을 흔들려고 했다. 방 여행을 기록한 두 번째 책 <나의 침실 야간 탐험>에서 그는 창문으로 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는 그 아름다움을 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흔하지만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지금 하늘이 잠들어 있는 인류를 위해 펼쳐놓은 이 숭고한 광경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산책을 나가거나 , 극장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이 잠시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서 빛을 발하는 찬란한 별자리를 감상하는 데 무슨 돈이 들까?"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않는 이유는 전에 그렇게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우주가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에 빠져 있다. 실제로 그들의 우주는 그들의 기대에 적당히 맞추어져 있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中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을 보면 마지막 부분에 '나의 침실 여행'이라는 책을 출간한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종종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낯설게 보기를 시도한다. 집에 놓인 물건들과 그 물건이 놓여 있는 위치, 색, 디자인, 쓸모, 물건에 관련된 기억을 되짚어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취향을 확인하게 되고 취향을 보면 추구하고 싶어 하는 삶의 방향성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읽은 책, 사놓고 안 읽은 책 들을 가만가만 살펴보면 과거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바뀐 생각과 가치관을 발견하기도 하고 변치 않고 그대로인 부분을 확인하기도 한다.

자신을 '새롭게 다시 보기'위해서 무엇이든 생각의 물꼬를 트는 도구로 삼아도 좋다. 노트 구석에 적어둔 메모를 다시 읽어 본다. 그게 내가 가졌던 생각이니까. 핸드폰 안에 찍어둔 사진도 그려둔 그림들도 가끔은 낯설게 보기가 필요하다. 그게 내가 좋아서 채집한 순간들이니까.

뭘 하든 한 번에 점프! 할 수 없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하는데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어떤 성공한 명사의 말을 듣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 오늘부터 새롭게 하루하루 달라지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그것을 도구로 삼는 것이다. 그 도구로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다시 도구로 삼아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기반으로 조금 더 더하고 더해 나가는 것이 단계를 밟는 것이다. 그 도구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성격, 생김새, 전문지식뿐 아니라 수술 경험, 족저근막염, 작은 키, 뻣뻣한 직모.. 무엇이든 내가 가지고 있어서 잘 알고 있는 것이면 된다. 오히려 초라한 것일수록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된다. 나의 자산을 새롭게 보는데 가진 사물과 책들, 찍은 사진과 적어둔 글귀들은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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