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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형 Jul 20. 2020

[일상, 그림일기] 자취 미니멀 주방 살림

필요한 것 없어도 되는 것

                                                                                       

미니멀 라이프를 접한 것이 2015년 즈음이다. 당시 미니멀 관련 많은  읽었는데  책을 보면 가끔 괴리감이 느껴졌다.

책 속에 실린 미니멀 리스트의 집은 예쁘고 세련된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비움을 설파하는 미니멀 책자를 보면 쇼핑 카탈로그를 보는 것처럼 오히려 소비욕구가 상승되었다.

쓰던 물건이 부서져 더 이상 쓸 수 없어졌을 때 오래 쓸 품질 좋은 물건을 찾는 건 이해되는데 미니멀을 한다는 명목으로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은 전부 버리고 미니멀 책자에 있는 것과 같은 예쁜 물건으로  교체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취향과 주관 없이 책자에 실린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여 그저 다른 소비 패턴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건이 적어진다 ㅡ시각적 공간이 깔끔해진다 /청소, 물건 관리, 쇼핑시간이 줄어든다ㅡ여가 시간이 늘어난다ㅡ스트레스가 줄어든다ㅡ스트레스가 적어지니 소비욕구도 적어진다ㅡ물건이 적어진다.


이렇게 선순환의 사이클이 만들어지면 좋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하다. 그 시간 안에서 물건으로  채워지던 만족감을 대신할 만족감을 찾지 않으면 미니멀 라이프는 유지되기 힘들다.

미니멀은 장점도 있지만  내가 가진 물건이 점점 사라지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대여시스템에 종속된다는 단점도 있다.

DVD, DVD 플레이어가 없다 ㅡ 넷플릭스나 티빙, 유튜브 프리미엄, 왓챠 플레이 등을 구독하게 됨

CD가 없다. 오디오가 없다 ㅡ 음악 스트리밍 이용권 구매

책이 없다 ㅡ 윌라 등 독서 앱 구독

집이 없다 ㅡ 전세, 월세, 장기 호텔 투숙


이렇게 가진 것이 있으면 가진 것을 쓰면 되는데  가진 것이 없으면  시스템에 휘둘릴 위험이 있다.

대여시스템의 할인 이벤트에 끌려다니기도 쉽고 그 서비스에서 추천해주는 취향으로 길들여지기도 쉽다. 그래서 미니멀로 여유가 생긴 시간을 주체적으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그냥 물질만 손에서 떠났을 뿐 돈 쓰고 시간 쓰며 끌려다니는 것은 똑같아진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진 물건이라도 있었지 이제는 오히려 가진 것도 없는 노예가 되어버린다. 중요한 건 자기 기준이다. 어디까지 물건을 소유할 것인지, 그리고 대여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대여할 것이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그것이 소비의 기준이 될 것이다.

물질이 주던 안정감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라는 안정감뿐이다. 물건을 사고 관리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생긴 여유 시간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활동에 써야 한다.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주관 없이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는 건 허공에 자신을 팽개치는 도박이다.

나도 어쩌면 인생 도박의 줄타기 중이다. 하지만 나를 만나는 시간이 길어졌음을 느낀다. 그 안에서 잃었던 나와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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