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탄력성을 대하는 나의 자세
회복탄력성의 사전적 의미는 '실패나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으로 정의되어 있다.
요 근래 문득문득 생각 난 나의 회복 탄력성은 어떨까? 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는데,,,
나는 회복 탄력성이 아주 낮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회복 탄력성이 낮다고 평가하는 데에는 지금까지의 나를 아주 객관적으로 봐 왔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나는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회복 탄력성이 높았던 거 같다. 솔직히 어린 시절 나는 회복 탄력성 자체를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남들에게 밑 보이지 않기 위해 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를 발휘해서 그런지 안정된 심리 상태를 되찾기 위했다기보다는 남들이 나를 쉽게 보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상황마다 속으로 그냥 인내했던 거 같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내가 회복 탄력성이 굉장히 높은 사람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이 회복 탄력성이 완전히 와장창 무너지게 된 거는 딱 30살에...
사춘기도 겪지 않았던 내가 삼십춘기를 아주 혹독하게 겪고 나서는 회복 탄력성은 탄력을 아주 잃어버렸다.
어떤 일이든지 겪으면 겪을수록 내공이 쌓여 더 단단해진다고 하지만 나는 완전히 반대다.
나의 유년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물론 그게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상황들이 좋지 않았다는 게 맞는 표현인 거 같다.
아빠의 사업실패로 인해 집에 빨간딱지가 붙는 거는 비일비재했었고, 아침에 분명 집에서 나왔는데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고 열쇠를 돌리니 집이 경매에 넘어가 한 순간 집을 잃은 기억도 있으며, 고등학교 개학을 앞둔 하루 전 갑자기 허리 디스크가 터져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며 매주 서울로 신경 주사 맞으러 다녔었던 상황과 더불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너무나 갑작스러운 엄마에게 닥친 암 그리고 19살이 되기 딱 일주일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간 엄마.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붙었던 학교를 포기해야 했었던 등등의 수많은 상황들 속에 이때는 남들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게 너무 싫었던 지라 측은하게 나를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은 척 더 센 척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커 왔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회복 탄력성이 낮아지게 된 데에는 힘든 상황 속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어느 순가 그 감정들이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후루룩 폭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딱 내가 30이 되어서 폭발해 버렸고 꽤 오랜 시간 몸 담았던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회복 탄력성은 0에 가까웠고 여전히 탄력성은 생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과 시간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그동안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만 생각했을 뿐 나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슬플 때는 그 슬픔에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충분히 슬퍼해 주고 아프면 아프다고 혼자 앓지만 알고 아프다고 말도 해야 하며 괜찮지도 않은데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다는 거다.
기쁠 일이 생겼을 때는 누구나 다 축하해 주지만,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는 철저히 혼자가 되듯이 나 스스로에게는 안 좋거나 슬픈 일을 겪었을 때도 충분히 아파할 시간적 여유를 주며 회복 탄력성을 조금씩 높여 나가면 어떨까?
회복 탄력성이라는 게 자존감이랑 연관이 깊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안 좋은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게 당연 베스트이겠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충분히 그 감정에 대해서 다 느끼고 조금은 가볍게 보내주다 보면 어느 순간 회복 탄력성=자존감은 높아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번 글을 잘 정리해서 쓰고 싶지만 이번에도 뭔가 주저리주저리 말도 안 되게 글을 쓴 거 같은데, 뭐 어때 이것 또한 내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방법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