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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18. 2017

무작위의 이야기들

내가 자주 들르던 서점이 있었다. 서점은 참 특이했다. 정확히 말하면 헌 책방이었는데, 책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책에 표시를 해 놓고 무어라 적어 놓은 흔적을 지닌 책들을 파는 서점이었다. 에픽테투스가 쓴 책이 8권이나 꽂혀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호기심에 하나하나 꺼내서 펼쳐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에픽테투스가 하는 말을 분석하려고 한 듯 문장마다 설명을 적어 놓았다.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코가 큰 캐릭터의 그림을 그려놓은 사람도 있었다. 같은 것을 읽으며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을테다. 헌책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하다. 

나는 지나다니는 인간들을 보다가 가끔 질겁할 때가 있다. 저 수많은 인간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겠지. 수 만가지의 사연들, 그들 자신이 기억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이야기들이 저 안에 무수히 있겠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인간은 우주를 담고 있다.




내가 어느 나라건 가게 될 때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음악을 연주하는 바나 공연장이다. 하지만 그냥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 아니라, Jamming session, 말하자면 즉흥음악연주가 벌어지는 곳을 꼭 간다. 즉흥음악연주라 함은, 사전에 어떤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뮤지션들이 무대 위에서 무작위로 음악을 같이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그곳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 정해진 노래가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아예 아무 음악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모든 것을 즉흥연주를 하면서 만들어 낸다. 이런 연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하는 사람의 연주 실력이나 그 사람의 경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연주하고 무엇을 부를지를 주장하지 않으며, 그저 듣는 순간, 무엇을 연주하고 부를지 알게 된다. 말과 똑같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주장하느라 상대의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의 말을 그저 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게 된다. 상대의 말 속에 상대의 감정과 상대의 바램마저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잘' 들어야 한다. 

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남녀가 팀이 되어서 추는 페어 댄스들이 그렇다. 페어 댄스를 출때 중요한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듣는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움직임 속에 나의 다음 움직임이 들어있다.




언제 가장 자유를 느끼는가?

음악이 연주되는 곳에 갔는데, 사람들이 손을 까딱 까딱 하고 있거나 다리를 떨고 있을 때, 그들의 얼굴에서 당장이라도 일어나 춤을 추고 싶다는 바램이 보일 때, 그리고 그때 나 혼자 아랑곳 없이 춤을 추기 시작할때, 그런 때에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다가 견디지 못하고 터진 것만 같이. '나는 자유로워 지고 싶어'나, '나는 자유로워 져야해' 라고 말 할 때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보여도 상관없어'를 할 때 나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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