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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19. 2017

파파


https://brunch.co.kr/@minj6000/16 로부터 이어지는 글입니다.





유난히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파파의 집으로 가기 위해 빨간 툭툭이를 잡아 탔다. 툭툭이라 함은 트럭 혹은 삼륜 바이크 뒤에 좌석을 붙인 형태의 택시인데, 치앙 마이에서 이동할 때 내가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치앙마이 외곽에 있는 어느 커뮤니티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평소라면 대충 어느 정도의 금액이 드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목적지까지는 거리도 꽤 있는 데다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거리 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라면 툭툭이 기사가 바가지를 씌울 게 뻔했다. 


 예상대로 툭툭이 기사는 500밧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고, 나는 눈치껏 250밧을 불렀다. 기사는 바로 눈도 깜짝하지 않고 다시 300을 불렀다. 마치 자신이 조금 전 500밧을 불렀다는 건 잊어버린 듯했다. 나도 그에 지지 않고 다시 230밧을 불렀다. 결국 우리는 250밧에 합의를 보고 나는 탑승을 하게 되었다. 파파의 집은 치앙 마이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어느 절 옆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한 뒤 앉아서 여유롭게 부채질을 했다. 차가 달리면서 시원한 바람이 내 땀을 보송보송 말려 주었다.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마저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십 분 정도를 달렸을까. 기사가 멈춰 섰다.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내리라는 것 같았다. 툭툭이에서 내렸지만, 나는 처음 보는 거리였다. 기사에게 절이 어딨냐고 물었다. 기사가 앞 쪽을 가리키며 조금 걸으면 나온다고 했다. 알겠다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기사가 툭툭이를 몰고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처음 보는 곳이었지만 기사가 바로 앞에 절이 있다고 하니 나는 그의 말을 따라 앞으로 걸을 뿐이었다. 고작 오분 정도면 나올 것 같던 절이, 아무리 걸어도 나오지 않았다. 벌써 삼십 분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난 길을 잃을 것 같았다. 마침 가방을 멘 학생이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학생을 잡고 절의 이름을 댔다. 학생이 내가 걷고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래, 나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더니 그 학생은 나에게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원 아워. 그러니까,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툭툭이 기사가 나를 일부로 먼 곳에 떨어뜨려 놓은 것임을. 


 절을 향하는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기사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아니, 대체 왜 그랬는지 애초에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후줄근한 여행자에게 대해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랬을까. 허공에 대고 물었지만 답해줄 이는 없었다. 


사람 마음이 평화로우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다가도 마음이 미움으로 들어차 버리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 고까워 보인다고, 따스히 느껴졌던 햇빛은 이제 살갗을 태울 것만 같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걷고 있는 거리는 왜 또 이렇게 삭막한지,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으련만 바람은 안 불고 땀만 송골송골 맺혔다. 그야말로 덥고 다리는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린애처럼, 집에 돌아가면 꼭 파파에게 하소연을 할 거라 마음먹었다.


결국 걸은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처럼 파파가 화실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땀에 쩔은 내가 터덜 터덜 화실로 들어가니 그제서야 파파가 나를 발견하곤 반겨주었다. 나는 곧장 파파에게 불평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툭툭이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날이 또 얼마나 더웠는지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걱정스레 듣던 파파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얼른 들어가서 쉬라고 말했다.


 갤러리로 들어가 누운 지 한 시간이 지나도 분이 가시지 않았다. 대체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기사를 왜 만났을까. 그 기사가 잘 흐르던 내 하루와 내 무드를 다 망쳐 놓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중에 그 기사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난다면 꼭 따져 물어야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그때 누군가 갤러리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파파였다. 파파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의 그 사람이 되기까지 그 사람이 겪어 온 고통을 생각해 보아라. 

고통이 표현하는 거야. 그 자신이 아니라, 그의 고통이 그의 행동으로서 표현되는 거다.

너는 지금 연민의 마음을 갖지 않고,

그 사람의 고통으로써 네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지 않으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를 두고 파파는 들어왔던 것과 같이 조용히 갤러리를 나갔다. 파파의 말을 듣고 바로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게 뭐라고 서럽기까지 했다. 


 곱씹어 들어야 마침내 그 의미를 가슴속에서 피워 내는 말이 있다. 그때 그가 나에게 해준 말은 나에게 그런 종류의 말이었다. 그가 용서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은 그로부터 이년이 더 지나서 완전히 깨닫게 되었다. 그것에 대한 얘기는 이후에 나올 이야기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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