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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18. 2017

살아있는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라


그는, 길거리에 피어 있는 들꽃을 보고 그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며,

그는, 일흔셋의 나이에 조그만 꼬마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매직쇼'를 벌이는 사람이다.

또 그는, 바닥에 비치는 나무의 그림자와 그 사이를 관통하는 빛을 보고 순수히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도 그와의 만남이 생생하다. 눈을 감고 더듬으면, 그가 내 노랫소리를 듣고 맨발로 화실로부터 달려 나오던 모습이 그려진다. 그 날 태국 치앙마이의 어느 갤러리에서 리허설 중이던 나는, 리허설 중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맨 몸에 론지(치마같은 미얀마의 전통의상)만을 두른 백발의 할아버지가 문 앞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맨발에다가 그의 한 손에는 정체를 모를 빗자루마저 들려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내 당황하는 얼굴은 아랑곳 않는 듯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진짜 예술가다. 이제부터 내 딸이 되어도 좋다." 그러더니 이 할아버지가 나에게 손짓하며 자꾸 어디로 따라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조금 수상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 하는 모양이 참 재밌어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그는 갤러리의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갔다. 화실이었다. 화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나를 의자에 앉히더니, 어떤 설명도 없이 갑자기 스케치북을 들고는 내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번뜩번뜩 빛이 났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그의 선들은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는 내 얼굴을 휘리릭 그리더니 내 앞에 툭 내려 놓았다. 분명히 그림 그 자체로는 닮은 구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안의 무언가가 나를 비춰주는 것 같았다. 그는 그치지 않고 종이를 한 장 더 꺼내더니 다시 내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곧 완성된 그림은 좀 전의 그림과는 달랐지만, 또다시 무언가가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마침내 그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어디서 났는지 책상 아래에서 꺼낸 긴 생머리의 검정 가발을 머리에 뒤집어 썼다. 여전히 설명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으로 웨이브를 만들어 내며 춤을 추던 그의 얼굴에 짐짓 심각한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박장대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십분여간 계속 춤을 추던 그가 잠시 후 마저 춤을 끝내고 의자로 와 다시 앉았다. 박장대소하는 내 얼굴을 보고 그가 '나 대단하지'라는 듯한 자부심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마치 개구진 소년같았다. 내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 할아버지가 갤러리의 주인이고, 그 아름다운 그림들의 화가라는 건 내 친구가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화가라고 했다. 게다가 그가 낸 저서만 해도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설명은 그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춤을 끝내고 마침내 자리에 앉은 그가 나에게 잠을 잘 데가 없으면 자기 갤러리에서 텐트를 쳐 놓고 자도 된다고 했다. 잠을 잘 곳은 있었지만, 나는 그러마, 했고, 정말 일주일 뒤에 짐을 옮겨 그의 갤러리에서 텐트를 쳐놓고 잠을 자게 되었다. 


그에겐 평생 침실이 없었다. 그는 그의 화실 바닥에 이불 몇 장을 깔고, 그 위에 간단한 모기장을 쳐 놓고는 매일 잠을 청했다. 그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그에게 매트리스라도 하나 놓고 자라거나, 침실로 가라거나 (실제로 그의 손님 접대용 집에는 침실이 두 군데나 있었다) 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갤러리에서 지내며 그와 일상을 함께 했던 일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가 무엇을 소유하려 한다거나 어떤 것에 욕심을 부린다거나 하는 일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의 삶은 정말 간소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그의 화실에 가면, 그는 이미 앞마당을 다 쓸고 새벽 빛을 전등 삼아 글을 적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말없이 그의 앞에 앉아 조용히 내 공책을 펴고 글을 적었다. 어느덧 우리 둘이 글을 다 쓰면 우리는 조그만 스케치북 하나를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돌러 나갔다. 


 길에서 첫 번째 마주하는 집은 '멍멍이의 집'이었는데, 개는 살지 않지만 우리는 그 집을 멍멍이 집이라 불렀다. 왜냐면 그 집에 사는 열 살 남짓의 아이가 우리만 봤다 하면 네발로 바짝 엎드려 강아지 인척 멍멍 짖거나 주위를 돌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고양이로 변신해서 미야옹 소리를 내고, 할아버지는 강아지 인 척 아이의 뒤를 쫓았다. 아이와 놀고 나면 우리는 그 다음으로 국숫집을 들르곤 했다. 닭고기로 육수를 낸 카레 맛이 나는 국수였는데, 우리는 가끔 한 두 번을 빼고는 매일 아침 그곳으로 가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그는 국숫집의 주인에게 나를 딸이라고 소개했고, 곧 동네의 모든 사람이 나를 텝시리의 딸이라고 알게 됐다. 나도 자연스레 그를 '파파'라고 부르게 됐다. 나에게 정말, 그는 아버지가 되어갔다.

 


국숫집에서 아침식사를 해결 하고 나면, 우리는 연유가 잔뜩 들어간 단 음료를 봉지에 꽁꽁 싸서 바로 옆 난민촌으로 향하곤 했다. 거긴 마땅한 문이 없어서 우리는 벽돌 앞에서 '덱 덱!' 하고 소리치곤 했는데, 그러면 벽돌 건너편의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올라와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우리가 싸 온 음료를 아이들에게 전해 주면, 아이들은 노란 꽃을 답례로 꺾어서 머리에 꽂아 주었다. 파파는 주머니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을 이용해 아이들 앞에서 매직 쇼를 벌였고,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마치 처음 보는 양 즐거워했다. 그럴 때면 마술을 보여주는 파파의 얼굴이나, 파파를 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한참을 다시 걸었다. 동네 지나가는 사람들과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걷던 그 길에는 야생화가 참 많았다. 파파는 매일 보는 풍경인데도, 나보다 훨씬 많이 봤을 풍경인데도, 마치 처음 보는 양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 꽃과 나무들을 눈에 담았다. 그는 나무들이 햇빛을 향해 뻗으며 만든 그 손들의 모양을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가 감탄하는 소리에 나도 그 꽃과 나무들을 온전히 담게 되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마찬가지로 그가 나에게 '이렇게 보아야 한다, 저렇게 보아야 한다' 한 적도 없다. 그는 단지 그 생명들을 보고 진심으로 자신이 감탄했을 뿐이며, 나는 그런 그를 보고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었다. 그와 지내면서 내 눈은 전혀 다른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햇빛과, 그로부터 만들어진 나무의 음영들, 그 사이를 관통하는 빛이 점점 내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야생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저 보여주었다.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 되기를 바라는 대신, 내가 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랬다.



"눈을 반으로 게슴츠레 한번 뜨고 봐봐"

"보이니? 나무가 한 색깔이 아니야, 나무는 그냥 하나인 거 같지만, 그 안에 어두운 부분도 있고, 밝은 부분도 있단다. 그게 다 모여서 한 그루의 나무를 만드는 거야."


 아이 같은 짓만 골라하던 파파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내 머리를 누가 두드리기라도 한 마냥 멍 할 때가 많았다. 파파는 지나쳐가는 돌멩이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길가에 떨어져 버린 나뭇가지 하나 지나치지 않았다.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한가운데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기라도 하면 그는 기어코 그곳까지 가서 나뭇가지를 구출했다. 그러고는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여기가 다- 내 집이야!"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의 집은 365일, 밤이나 낮이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 한 번은 어떤 남자가 흉기를 들고 들이닥쳐서 그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육탄전 끝에 그를 내쫓았다면서, 그런 경험은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마냥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는 대문을 언제나 열어두었다. 

가끔은 잘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하루나 이틀을 재워달라고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파파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예고치 않은 손님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에게 손님방에 이부자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파파에게는 어디든지 그의 집이었고, 누구든지 그의 친구였다.


사실 앞에 언급한 일화처럼 그가 육탄전으로 남자를 내쫓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화가가 되기 전 유명한 복싱 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하듯 일흔셋인 그는 나이가 한참 어린 나보다 훨씬 체력이 좋았다. 복싱을 그만두고 그는 어떤 결심을 하고는 스케치북과 종이 몇 자루를 챙겨서 태국 방방곡곡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그가 향하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돈 한 푼 받는 일 없이 초상화를 그려주었고, 그렇게 몇 년을 떠돌았다. 그는 가끔씩 나를 데리고 행사가 있는 절에 가고는 했는데, 어느 한 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식사 시간을 빼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주던 그의 체력을 못 따라간 내가, 무더위에 탈진을 해서 절 한편에 몸을 뉘이고 시름시름 앓았던 때도 있다.  


파파의 또 다른 딸, 그러니까 내 자매(?)인 7살짜리 노이를 빼고는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의 체력을 따라갈 이가 없었다. 그는 정말 매 순간을, 살아 있는 것처럼, 살았다. 그리고 그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서 살아 있음을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쉽게 지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를 만나기 전에도 스스로를 구도자라고 한다거나, 도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만나 보았지만, 나는 곧 그들이 하는 행동에서 그들의 말의 신빙성을 잃었다. '나만 도를 찾으면 된다'는 식의 구도자들이나, 자신이 쫓고 있는 도가 마치 신성한 것인 양 자신의 기준에서 도를 쫓지 않는다고 보이는 이들을 무시하는 수행자들을 보면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우선, 그는 구도이니 뭐니, 진리인지, 도인지 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자주 그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가 각자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장님일 수밖에 없단다. 나도 장님이고, 너도 장님이야." 



 그는 절대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대신, 그저 인생은 참 아름다운 것임을 믿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나무에서 아름다움을 보았고, 지나가는 아이의 미소에서, 집 앞에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고양이에게서, 서로를 쫓아가는 한 쌍의 나비에게서, 한 사람의 고통 속에서, 그 몸부림 속에서, 물지게를 이고 가는 남자의 등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그의 얼굴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괴짜 중의 괴짜인 그는, 어느새 나에게 있어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자, 스승이자, 친구이자, 남매이자, 사랑인 사람인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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