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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15. 2017

Mi Amor

사거리의 그녀

내가 그녀를 만난 건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대형 마트 앞이었다. 그녀는 사거리의 코너에 군데군데 헤진 매트리스를 하나 깔고는, 갈색의 개와 함께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유독 쳐진 귀를 가진 그 개는 보물이라도 된 듯 여자의 한 팔 안에 꼭 안겨 있는 모습이었다. 


그 길목은 내가 당시 공연을 하게 된 공연장을 향하는 길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나는 매일 빠짐없이 그 길목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항상 그 길, 매트리스 위에서 종이컵에 한 가득 술을 따라 마시고 있거나, 땡 볕 아래 누워 혀를 반쯤 밖으로 내놓은 개와 함께 잠을 청하곤 했다. 게다가 술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그런 탓인지, 그녀는 항상 양 볼이 벌게져서는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웃을 때면 치아가 있을 자리의 빈 공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녀의 이런 모습이 익숙해질 때쯤, 매일 보는 낯선 이방인 여자를 그녀도 점점 알아보기 시작했다. 서로 얼굴이 익숙해지자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나는 가끔 먹을거리를 그녀에게 구해 주고는 했다. 하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그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지나던 중, 그녀가 구슬프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매일같이 손에 들고 있던 술병도 보이지 않았고, 종이컵도 보이지 않았다. 취해서 울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매일 그 길목을 지나다니며 정이라도 든 건지, 울고 있는 그녀를 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내가 그녀의 앞에 앉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녀의 입에서 봇물 터지듯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잔뜩 감정이 격앙되어서 화가 난 듯, 슬픈 듯 보였다. 당연히 포르투갈어를 알지 못하는 내가 이해할리 없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이해를 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것이 포르투갈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방인 일지라도, 그녀는 괜찮냐고 물어봐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 길목에 사는 현지인 친구에게 들어 안 사실인데, 어느 날 누군가가 사거리에 차를 세우고는 그녀가 잠시 다른 곳을 보는 사이 그녀의 개를 훔쳐 차를 타고 달아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단 하나뿐인 가족인 그 개를 잃은 슬픔에, 그녀는 술을 마시는 것도 잊고 며칠을 울고 있던 것이다. 


기적적으로 개는 며칠 뒤 돌아왔다. 개를 훔쳐 달아났던 사람이 마찬가지로 개를 훔쳐 가고 며칠 뒤에 다시 같은 방식으로 개를 놓아주고는 차를 타고 도망갔다고 했다. 그에 따라 며칠 뒤, 그녀는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하게 되었다. 개와 같이 땡볕 아래서 잠을 청하거나, 길거리 노숙인들과 다 같이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상으로 그녀는 돌아왔다. 


하나 변한 게 있다면, 그녀가 나를 'Mi Amo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한국말로 '내 사랑'이라는 친한 사람에게 쓰는 애칭이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나를 친구라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올 참이면 그녀는 멀리서 '내 사랑!'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양 팔을 크게 벌려 나를 안아 줄 준비를 했다. 그러면 나는 꼭 그곳에 들려 그녀가 주는 포옹의 인사를 받고는 옆에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자기가 먹던 과자를 나눠 주거나, 자기가 마시던 양주를 나눠 주려고 하거나 했다. 그녀가 술을 주려 할 때면 독한 술을 못 먹는 나는 한사코 거절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름 대신 우리는 서로에게 'Mi Amor'로 기억되었다. '내 사랑'.



그녀는 가끔 술에 취해 나에게 메일 주소를 묻고는 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세 번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노트를 찢어 그녀에게 메일 주소를 적어 주면, 며칠 뒤 꼭 그녀는 마치 처음 묻는 양 다시 메일 주소를 물었다. 나도 마치 처음인 양 그녀에게 다시 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다.


내가 브라질을 떠나기 며칠 전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을 때, 그녀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나에겐 유독 기억에 남는 인연들이 있다. 그녀와의 인연도 그중 하나다. 왜일까. 우리 서로는 아는 게 없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순수함을 느꼈다. 어떤 체면치레가 없이, 상대의 나에 대한 판단에 대한 걱정 같은 것 없이,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이야기했으며, 웃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런 인연은 아주 쉽고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발견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지금 글을 읽는 당신이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그 사거리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있을까?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 개를 꼬옥 끌어안고 잠을 청하고 있을까? 종이컵 가득 술을 따르고 있을까?

 유독 그녀가 그리운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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