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있을 때 조용히 명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내가 찾는 절이 있었다. Wat Umong - 왓 우몽은 태국의 여러 절이 그렇듯이 그런 화려한 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관광객이 오는 절도 아니었다. 왓 우몽은 특이하게도 좁디좁은 터널 안에 미로처럼 절을 만들어 놓았다. 고개를 한껏 숙이고 터널을 지나가면, 그 양 쪽으로 다시 좁게 난 길 끝에 내 몸만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부처님이 앉아 있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부처님의 바로 앞으로부터 채 일 미터가 안 되는 곳에 가 앉으면, 부처님은 언제나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미소 지어 주었다. 내가 행복할 때면 내 행복에 공감하는 것처럼 미소 지어 주었고, 나에게 근심이 있을 때면 그것이 곧 지나갈 것임을 아는 듯 미소를 지어주었다.
왓 우몽은 한적한 절이었기 때문에,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마주 앉아 부처님과 독대를 할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 그렇게 앉아 있을 때면 나는 부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대부분은 나의 이야기였고, 그는 들어줄 뿐이었다. 내 사랑 타령부터 시작해서, 가족 이야기, 내 근황,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내 번뇌에 대한 이야기마저 부처님은 모두 들어줄 가치가 있다는 듯 인내심 있게 들어주었다.
우리는 불확실성에 사는 것을 끔찍이 두려워한다. 당장 내일 직장을 잃을지 모르고, 내일 당장 길거리로 나 앉게 될지도 모르고,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우리는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정성이 있는 전공을 하고, 취업에 보장이 되는 학교를 졸업하려 하고, 안정성이 있는 직장에 다니고 싶어 한다. 공무원 경쟁률이 날이 갈수록 더 오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안정성에 집착하는 것 이면에는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노력해도 우리의 삶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두 눈을 가리고자 한다.
그 당시의 나도 그랬다. 마치 일부로 안정적인 삶을 피하려는 양, 고등학교도 때려치우고, 대학교도 때려치우고, 외국의 유명한 극단에서 일하기도 때려치웠지만, 동시에 남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이젠 어떻게 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의 부재를 견딜 수 없었다. 정말, 이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믿는 이 '진리'가 대체 그 '진리'가 맞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었다. 내가 믿는 이 '아름다움'도 대체 진짜 아름다움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의심이 맞다면 대체 나는 무엇을 따라가야 할까. 이 모든 답이 과거의 나 자신에게 뚜렷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때의 나는 마치 내가 확신했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 부처님의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부처님의 미소 짓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눈을 감았다. 마음을 비우고자 했지만 좀처럼 마음은 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번뇌는 물 위에 동동 떠오르는 기름처럼 내 의식 위에도 동동 떠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 나에게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다'
내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아니, 내 앞의 부처님이 내 마음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목소리가 이어 말했다.
'여기 없는 것 같지만, 여기 있다. 잃어버린 것 같지만, 떠난 적이 없다.'
'그저 들여다보아라. 그리고 자연스럽게 살아라.'
그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눈을 떴다. 내 마음이 그런 말을 지어낸 건지, 정말로 붓다가 내 마음을 통해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그 둘이 의미하는 바는 똑같았다. 사실 buddha 붓다는 어느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붓다는 '깨어난 자'를 의미한다. 누구든지 깨어난다면 '깨어난 자' 붓다가 되는 것이다. 내가 부처님의 앞에 앉아 번뇌하는 동안, 그 번뇌 속에서 내 마음이 깨어나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말을 증명해 낸 셈이다.
'여기 없는 것 같지만, 여기 있다. 잃어버린 것 같지만, 떠난 적이 없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입 안에 머금었다. 다시 부처님의 얼굴을 보았다. 부처님은 나를 마주 보며, 그것이 곧 지나갈 것임을 아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