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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02. 2017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는 마음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출국 스탬프를 찍은 후에, 케냐의 영토로 넘어가서 버스를 탔는데…. 아뿔싸, 입국 스탬프를 찍는 것을 깜빡했다. 케냐 영토에서 출국 스탬프를 찍은 후, 탄자니아 영토로 넘어와서 입국 스탬프를 또 찍었어야 했는데, 탄자니아에 왔다는 사실에 너무 들뜬 마음에 입국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 그것도 모르고 나는 탄자니아 중심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서는 아무 걱정 없이 옆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실컷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서서히 멈추더니, 앞 문이 열리고 내 다리 길이 만한 장총을 든 군인 세 명이 올라탔다. 곧 그들은 승객 하나하나의 여권을 받아 들고는 비자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주 당당하게 내 여권을 내밀었고, 군인이 내 여권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비자”


얼마간을 뒤져보던 군인이 말했고, 나는 여전히 당당하게 케냐의 출국 스탬프가 찍힌 곳을 펴서 보여주었다. 군인이 스탬프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탄자니아 입국 스탬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여권을 뒤적댔지만, 애초에 찍힌 적이 없는 입국 스탬프가 거기서 나올 리가 없었다. 군인이 버스 앞 쪽에서 손짓했다. 내리라는 표시였다. 나는 당황스러움과 장총을 가진 군인들 사이에서 있는 공포에 한숨을 푹푹 쉬어대며 군인을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내가 내린 곳은 정말 허허벌판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도로, 주변에 다 쓰러져가는 집 두 채가 그 길에 있는 전부였다. 군인들이 나에게 손짓하더니 길 한 켠으로 갔다. 거기에는 파란 옷을 입은 경찰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 경찰의 귀는 특이했는데, 양 쪽 귓불이 턱 끝까지 추욱 늘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귀에 크게 구멍을 뚫어서 귀가 늘어난 것 같았다. 

 그가 군인과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나는 케냐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군인 한 명한테 얼마의 돈과 내 여권을 맡기면, 군인이 내 대신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 올 거라는 거였다. 몇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케냐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여권을 군인이 가져간다고 하니 괜히 무서웠다. 더군다나 버스를 타기 며칠 전엔 심지어 납치를 당한 뻔한 적이 있던지라, 그때의 나는 경계심으로 가득했고, 잔뜩 긴장해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알지 못하는 군인이 돈과 여권을 가져간다고 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비자를 받는 데에 필요한 돈과 여권을 건넸다. 


군인이 떠났는데,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였다. 군인이 떠나자 허허벌판에 이 귓불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아저씨와 단 둘이 남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온몸이 굳고 공포심이 올라왔다. 게다가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고 실실 웃고 있었다. 남자의 벌어진 앞니가 유독 눈에 띄었다.


“밥 먹었나요?”


그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한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갑작스럽게 홀로 남겨지게 되었고, 머리 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생각하며 온갖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여권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이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면 어쩌지.’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돌아왔다. 양 손에 무언가를 든 채였다. 그는 내가 앉은 의자 앞의 간이 테이블에 손에 들린 것들을 내려놓았다. 음식이었다. 밥과, 고기들이 보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그 음식들은 두 명이 먹기에는 적은 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점심이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나에게 접시를 건네주었다. 그는 기꺼이 그의 밥을 나누어주었다. 


“무섭나요?”


그렇게 밥을 먹는데,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물어보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가 다시 말했다.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잘 알겠지만, 라이온 킹에는 하쿠나 마타타라는 노래가 있다. 


‘하쿠나 마타타, 끝내주는 말. 근심과 걱정 모두 떨쳐버려, 욕심 버리면 즐거워요.’


하쿠나 마타타는 한국어로‘문제없어’라는 스와힐리어다. 그는 나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법처럼 내 몸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마사이족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늘어진 귓불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마사이족에게는 귓불이 크면 클수록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 그는 부족의 경제가 어려워서 사회로 나와서 돈을 벌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는 웃음이 아주 맑았고, 무서워하는 나를 존중해주고 있었다. 그의 귓불과 상관없이, 그 순간 그는 아름다웠다.


 긴장이 풀리니 그때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긴장해서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바로 뒤에 내 몸만 한 당나귀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조그만 아이 둘이서 내 배낭에 달린 조그만 북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열여섯, 열일곱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눈만 마주치면 부끄러워서 엄마의 치마폭 뒤에 숨는다.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헤헤 웃으며 얼른 나무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내가 북을 두드리며 손짓하니, 아이들이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이들이 다가와서는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의 북소리에 맞추어서 내가 아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살 수- live 없던 것들을, 나는 그 순간 살고 있었다.


내가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두 시간 여 뒤에 군인이 도착했다. 펼쳐 본 여권에는 탄자니아의 입국 비자가 찍혀 있었다. 그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들을 오해했던 내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나는 나 자신의 기억에 잠식당해서, 실체를 보고 있지 못했던 거였다. 


“마음이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아야만 진정한 자유가 있다”

인도 출신의 명상가이자 사상가인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저서에 쓰인 말이다. 


내가 얼마 전 납치를 당할 뻔했다는 기억이 내 마음을 불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눈 앞에 놓인 인연들을놓칠 뻔했지만, 마사이족 출신의 그 경찰이 ‘하쿠나 마타타’라는 말로써 나를 돌이켜 세운 것이다. 그는 그의 배려로써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군인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탄자니아 가는 차를 히치하이킹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 경찰이 나를 끝까지 도와주어서 지나가는 행인의 차를 어렵지 않게 잡아 탈 수 있었다. 내가 두려운 마음으로 난생처음 본 행인의 차에 타기 전, 그가 미소 띤 얼굴로 다시 한번 말했다.


‘하쿠나 마타타’


난 난생처음 보는 행인과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탄자니아로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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