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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an 29. 2017

2016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 2일 차 후기

유례없이 뜨거웠던, 그렇지만 음악으로 가득했던 그 여름날

더워도 너무 더운 날씨였다. 맑은 송도 하늘의 햇볕이 어찌나 뜨겁던지, 평소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필자도 이 날 만큼은 현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연신 땀을 닦아내야 했다. 입장시간이 다가오자 지독한 더위도 문제없다는 듯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 비 오듯 땀을 쏟는 방문객들의 얼굴엔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다.

어언 11회를 맞은 페스티벌은 이번에도 매끄러운 진행을 선사했다. 스테이지 간 동선은 적당했고, F&B 부스와 피크닉 테이블, 화장실 등의 부대시설 역시 규모와 질적 측면에서 이용에 불편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관객들을 만족시킨 것은 공연의 라인업이었다. 록 페스티벌이란 정체성에 걸맞은 다양한 록 뮤지션들의 출연 예고는 '역시 펜타포트'란 감탄을 자아냈다.




둘째 날 공연에는 총 22팀이 무대에 올랐다. 포문을 연 것은 신인 밴드 더 한즈였다. 신한카드 스테이지에 올라 메인 무대를 가리키며 “언젠가는 저 무대에 서겠다.”는 포부를 밝힌 당찬 신인은 'Party maker', 'Mars' 등을 열창하며 분위기를 가열했다. 이어서 등장한 피해 의식과 더 베인 또한 뜨겁게 무대를 달구며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곧이어 6인조 혼성 레게 밴드 오리엔탈 쇼커스가 드림 스테이지의 첫 주자로 나섰다. 트롬본과 색소폰 등 관악기 연주가 그루브를 만들자 객석에선 금세 춤판이 벌어졌다. 아이유의 '을의 연애'를 커버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들은 이날 모든 공연을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음악을 들려준 팀 중 하나였으나, 관객 호응도는 여느 밴드 못지않았다. 뒤따라 등장한 블루스 록 밴드 아이 엠 낫은 특히 여성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프런트 맨 임헌일의 제스처 하나, 기타 연주마다 외마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리엔탈 쇼커스, 로맨틱 펀치, 라이프 앤 타임, 데이브레이크


같은 시각, 메인 무대인 펜타포트 스테이지에선 로맨틱 펀치가 스탠바이하고 있었다.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첫 번째로 야외무대에 서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낮 공연이라 걱정했다.”는 팀의 우려와는 달리, 배인혁의 샤우팅과 함께 등장한 밴드는 순식간에 거대한 관중을 운집시켰다. 마이크를 활용한 특유의 퍼포먼스와 화끈한 무대 매너는 확실히 대형 공연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몽유병'과 '파이트 클럽', '토요일 밤이 좋아' 등 잘 알려진 곡부터 신곡 '굿모닝 블루'와 동방신기 원곡의 '주문'까지, 슬램과 떼창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호주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더 프리쳐스(The Preatures), 얼마 전 신보 < WITH >를 발표한 베테랑 밴드 데이브레이크는 각각 드림 스테이지와 펜타포트 스테이지에서 잘 들리는 선율과 탄탄한 연주로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등장한 라이프 앤 타임. '꽃'의 기타 리프가 울려 퍼지자 공연장은 들끓었다. 'My loving city'와 '호랑이', 산울림 원곡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등 짜릿한 레퍼토리에 맞춰 관중들의 기차놀이, 과격한 슬램이 계속됐다.




늦은 오후가 되며 작열하던 태양의 기운이 누그러지자 제이레빗과 십센치가 무대에 등장했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향유하는 듀오답게, 무대는 가수와 객석이 하나 되는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메인 스테이지에서 진행된 십센치의 무대엔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어 '쓰담쓰담', '아메리카노', '봄이 좋냐' 등 히트곡 퍼레이드를 합창했다. 무대 중간 소방차를 동원해 공중으로 물을 뿌리는 등의 이벤트도 볼거리였다.


  

여유로운 인디 팝과 함께 잠시 소강상태였던 록 스피릿에 다시 방아쇠를 당긴 것은 앳 더 드라이브인(At The Drive-In)이었다. 1990년대 후반 결성돼 개러지, 펑크적 요소가 함유된 음악으로 사랑받았던 밴드는 이번 첫 내한 공연에서 파워풀한 무대로 자신들을 뇌리에 각인시켰다. 이들은 환호하는 관객을 향해 슬라이딩을 하고 소화기를 뿌리는 등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찬사를 이끌어냈다. 바통을 이어받은 밴드는 그룹러브(Grouplove). 'Itchin' on a photograph' 등이 국내에서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며 지명도를 획득한 팀은 해가 지기 전 마지막으로 펜타포트 스테이지에 올랐다. 화려한 전신 타이즈 차림으로 등장한 보컬 헤나 후퍼를 비롯, 개성 강한 무대 의상과 퍼포먼스로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이디오테잎(위), 크로스페이스(아래)


 이날 공연에서 가장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낸 팀은 단연 이디오테잎이었다. 이들은 1시간여의 공연 시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내달렸다. 멜로딕한 신시사이저와 파워 드럼, 감각적인 백드롭 영상은 드림 스테이지를 한순간에 거대한 클럽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공연 중간('Toad song') 5.18 민주화 운동과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한국의 현대사를 담은 영상을 띄운 순간은 압도적이었다. EDM이 음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시점에, 이디오테잎이 가진 특별한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한바탕 에너지를 불태웠지만 아직 지치긴 일렀다. 현해탄을 건너온 트랜스코어 밴드 크로스페이스(Crossfaith)가 펜타포트 스테이지에 등장했기 때문. 2년 전에 서브 스테이지에 등장했던 밴드는 올해 메인 무대에서 그 열기를 이어갔다. 이들은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의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며 구름 떼 같은 관중을 결집시켰다. 'Wildfire', 'Devil', 'Omen' 등 강한 개성의 무대가 계속됐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영국의 밴드 나씽 벗 띠브스(Nothing But Thieves)는 드림 스테이지의 헤드 라이너로 모습을 드러냈다. 화제성을 입증하듯, 신인임에도 많은 인파를 동원한 밴드는 신예답지 않은 능숙한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이날의 헤드 라이너 위저(Weezer)가 나설 차례.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밴드를 맞기 위해 펜타포트 스테이지 앞은 일찌감치 포화상태였다. 10분의 지연 후 'California kids'로 등장한 이들은 시종일관 노련한 진행을 뽐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위저입니다. 재미있을 거예요.”부터 시작해서 공연 중 멘트 대부분을 한국어로 준비한 노력이 돋보였다. 

특히 프런트 맨 리버스 쿼모는 객석에 난입해서 태극기를 흔들고, 왕관과 망토 차림으로 'King of the world'를 부르는 등 다채로운 팬 서비스를 선사했다. 물론 음악 또한 훌륭했다. 'Perfect situation', 'Beverly hills' 등 대표적 히트곡부터 지난 내한 당시 화제가 됐던 '먼지가 되어' 커버까지, 황홀한 떼창과 무대가 이어졌다. 'Buddy holly'를 앙코르곡으로 준비한 밴드는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 무대 뒤로 사라졌다.


 위저의 무대를 끝으로 펜타포트 스테이지는 불이 꺼졌으나, 드림 스테이지는 카스 블루 스테이지로 그 이름을 바꾸고 마지막 관객을 맞았다. 딕펑스를 시작으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단편선과 선원들, 전범선과 양반들이 무대에 올라 저물어가는 축제 이튿날의 아쉬움을 달랬다. 특히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펑키한 음악과 함께 익살스러운 춤 동작을 선보이며 높은 호응을 얻었다. 


비록 송도의 햇볕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쾌적한 환경이 조성됐다. 그야말로 야외 공연에 최적화된 날이었다. 무대를 장식한 뮤지션들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관객들의 태도, 열정 또한 환상적이었다. 물론 고질적 문제인 음향은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고르지 못한 출력, 자잘한 사운드의 충돌 등 아쉬운 순간들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모두 상쇄한 것은 페스티벌을 향한 하나 된 마음이었다. 이날 모인 수많은 관객들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유례없이 뜨거웠던, 그렇지만 음악으로 가득했던 그 여름날을.


사진 : 예스컴이엔티 제공

* 2016년 8월 IZM 기고 http://bit.ly/2kGfq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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