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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an 29. 2017

여전한 '팝의 여왕', 마돈나 일본 공연

‘반항의 심장’은 여전히 요란하게 펄떡거리고 있었다.

지난 2월 13일 토요일, 마돈나가 < Rebel Heart Tour >의 일환으로 10년 만에 일본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열린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는 오랜 기다림의 끝을 환영하는 2만여 관중들로 가득 찼다. 당초 7시로 예정된 개막 시간을 두 시간 가까이 넘긴 8시 55분이 되어서야 막이 올랐지만, 관객들은 지친 기색 없이 DJ매리맥(DJ Marymac)의 디제잉에 맞춰 춤을 추고 파도타기를 하며 분위기를 예열했다. 


이윽고 시작된 공연은 과연 ‘팝의 여왕’다웠다. 2시간 10분간 펼쳐진 혼신의 무대는 한 치의 지루함도 없었다. 반골 정신으로 똘똘 뭉친 베테랑에게 관객들은 연신 감탄, 환호했고 트레이드 마크인 댄스 곡들이 이어질 때는 객석에서도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내국인과 외국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젊은이와 중, 장년층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마돈나의 음악으로 하나가 됐다. 


그의 춤과 노래 앞에 59세라는 나이는 무의미했다. 박력 있는 춤사위는 젊은 댄서들을 압도했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무대 매너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새롭게 편곡한 기존 히트곡과 작년 발매한 13집 < Rebel Heart > 수록 곡을 적절히 조화시킨 세트 리스트는 올드팬과 일반 대중을 모두 사로잡기 충분했다. 노련한 선곡과 매끈한 진행이 가히 수준급이었다.

여느 때처럼 탁월한 스크린 활용이 돋보였다. 'Iconic', 'Holy water' 등에서 대형 화면에 3차원으로 공간을 구현, 무대 세트의 물리적 경계를 허문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Burning up', 'La isla bonita' 등에서는 노래와 조화를 이루는 영상물을 이용해 흡인력을 높였다.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자전적으로 풀어낸 ‘Rebel heart’를 부를 때는 그의 33년 궤적을 팝아트식으로 표현한 그림들이 나타나 감동을 더했다. 진보적, 인류애적인 그의 가치관을 십분 반영한 감각적 영상은 ‘Illuminati’ 무대의 화룡점정이었다.


대규모 퍼포먼스에 어울리는 정교한 세트도 볼거리를 제공했다. 비장한 인트로 영상에 이어 감옥에 갇힌 마돈나가 첫 곡 ‘Iconic’을 부르며 천장에서 내려오자 객석에선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선형 계단에서 남성 댄서와 긴장감 넘치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Heartbreakcity’를 부르던 중, 그를 밀쳐 떨어뜨리고 ‘이제 이곳에 사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절규하듯 ‘Love don’t live here anymore’를 부를 때는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Body shop’의 클래식 자동차와 주유소 세트는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짜임새 있는 스토리 텔링을 가능케했다.

마돈나는 공연에서 단 10초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았다. 첫 번째 섹션 후 그가 의상을 교체하기 위해 무대 밖으로 사라지자 댄서의 독무(‘Messiah’) 가 이어지며 시선을 집중시켰고, 두 번째 섹션 후에는 남녀 댄서들이 침대 위에서 1990년 < Blond Ambition World Tour >의 ‘Like a virgin’ 무대를 연상케 하는 섹시한 퍼포먼스(‘S.E.X.’) 를 펼쳤다. 세 번째 섹션이 끝나고 장대를 밟고 올라선 댄서들이 < 태양의 서커스 >에서나 볼법한 곡예를 선보이자(‘Illuminati’)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 날 퍼포먼스의 최고봉은 ‘Holy water’였다. 수녀의 베일을 쓰고 몸매를 훤히 드러낸 댄서들은 돌출 무대에 설치된 4개의 십자가에 매달려 폴 댄스를 췄고, 연신 성호를 긋던 마돈나도 노래 중간 폴 댄스에 합류해 ‘Vogue’의 일부분을 불렀다. 곧이어 메인 무대에 열두 명의 댄서가 탁자와 함께 나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을 재현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1987년 < Who’s That Girl World Tour >부터 서서히 드러냈던 종교(특히 가톨릭)에 대한 불만과 항거를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랜 음악 인생 동안 쌓인 내공은 상상 이상이었다. ‘Living for love’, ‘Unapologetic bitch’, ‘Bitch I’m Madonna’ 등 신곡은 물론 ‘Deeper and deeper’, ‘La isla bonita’, ‘Music’, ‘Material girl’ 등 골든 히트까지 20곡에 이르는 노래에 맞춰 쉼 없이 춤추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창을 뽐냈다. 특히 직접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거친 록 보컬을 들려준 ‘Burning up’, 드넓은 아레나를 혼자서 유유히 누비며 호응을 이끌어낸 ‘Like a virgin’은 환상적이었다. 발매 당시 일본에서 드라마 삽입곡으로 사용되며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La isla bonita’에서는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합창이 이어졌다.

젊은 시절보다 굵고 짙어진 보컬이 주는 감동 또한 상당했다. 직접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1986년 히트곡 ‘True blue’와 에디트 피아프의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를 부를 때는 눈물을 글썽이는 관객도 많았다. 마릴린 먼로의 버전으로 잘 알려진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를 무반주로 짧게 부르는 대목에서는 은은한 우아함이 묻어났다. 연륜이 쌓여 농익은 목소리와 태도는 그가 단순히 파격적 의상과 퍼포먼스만으로 연명해온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마돈나 투어로는 이례적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들도 눈에 띄었다. 그는 ‘True blue’, ‘Don’t tell me’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팬들의 합창을 유도했고, ‘Unapologetic bitch’에서는 자신의 의상을 흉내 낸 팬 2명을 무대 위로 올려, 함께 춤추고 대화하며 그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했다. 일본어로 기본적 인사말을 준비한 것은 기본, “내 말 알아듣고 있나요?” 같은 말을 서툰 일본어로 하며 웃음을 유발했으며, 30년이 넘도록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비록 무대에는 늦게 올라왔지만 관객들을 겸손하고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은 대스타다웠다.

“파시스트 독재자가 큰 가죽 부츠를 신고 당신을 입 다물게 하기 위해,

당신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도덕적인 사람인 척 당신에게 다가올 때,

당신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 해요. 

나는 혁명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나와 함께 하겠어요?”

- 인트로 中 - 


마돈나의 도쿄 공연은 왜 아직도 그가 ‘팝의 여왕’인지, 데뷔 33년이 지난 59세의 나이에도 각국의 아레나를 모조리 매진시키는 힘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는 변함없이 파워풀하고 우아하게, 흔들림 없이 춤췄고 깊어진 목소리로 묵직한 울림을 자아냈다. 폭발하는 에너지, 무대를 집어삼키고 관객들을 휘어잡는 괴력은 도저히 적수가 없어 보였다.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던 ‘반항의 심장’은 여전히 요란하게 펄떡거리고 있었다. 


사진 촬영 : Yoshika Horita

사진 제공 : 라이브 네이션 재팬


* 2016년 2월 IZM 기고 http://bit.ly/1mSTH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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