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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Sep 15. 2021

[Mercury - Act 1]

댄 레이놀즈가 포착한 오늘날 우리네 인생사

이매진 드래곤스 [Mercury – Act.1]


'Wrecked'


2010년대 메인스트림 록 시장을 대표하는 밴드는 단연 이매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다. 2008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결성된 그룹은 2012년 첫 앨범 [Night Visions]부터 히트곡을 터트렸다. ‘It’s Time’(15위), ‘Radioactive’(3위), ‘Demons’(6위)가 차례로 인기 차트에 상륙했고, 밴드는 곧장 스타 밴드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Radioactive’의 돌풍이 거셌다. 얼마 전 캐나다 출신 팝 가수 위켄드(The Weeknd)가 ‘Blinding Lights’(2020)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가장 오래 머문 노래는 이매진 드래곤스의 ‘Radioactive’였다. 무려 87주를 100위 안에서 보냈다.


국내에서도 이들의 명성은 상당하다. 이미 인기와 더불어 ‘상상용’이라는 애칭까지 획득한 지 오래다. 2014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 이른바 ‘롤드컵’의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된 ‘Warriors’(2014)는 이후 각종 광고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2020)에 삽입되며 한국에서 이매진 드래곤스를 대표하는 노래가 됐다. 이들은 ‘Warriors’의 인기에 힘입어 2014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롤드컵’ 결승전 무대에 올라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는가 하면, 이듬해에는 2집 [Smoke + Mirrors]를 발표하고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팀의 핵심이자 보컬리스트인 댄 레이놀즈(Dan Reynolds)는 그룹에 색깔을 더하는 인물이다. 그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음색과 파워풀한 샤우팅, 짜릿한 고음으로 이매진 드래곤스의 컬러를 확립했다. 강성 사운드뿐만 아니라, 팝적인 접근도 얼마든 가능한 것이 그의 강점이다. 더없이 산뜻하고 통통 튀는 ‘Thunder’(2017, 4위)를 떠올려 보라. 표현의 측면에서 보자면 정반대에 위치한 ‘Believer’(2017, 4위)와 ‘Thunder’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록 보컬, 팝 보컬은 그리 많지 않다.


창작자 댄 레이놀즈를 필두로 한 이매진 드래곤스의 특장점은 실험성과 대중성의 조화다. 이들의 음악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절충을 이룬다. 전통적인 록 사운드에서 나아가 일렉트로니카, 힙합, 팝과의 하모니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한편, 대중적인 선율과 진행으로 듣는 이를 매혹하는 식이다. 여느 팀과도 구분되는 확실한 개성과 대중을 향하는 멜로디 감각이 맞물려 이들을 성공 가도로 이끌었다. 꾸준히 이어진 히트 레퍼토리와 [트랜스포머 4](2014),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2018) 등의 유니크한 사운드트랙은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3년여 만에 나온 이매진 드래곤스의 통산 다섯 번째 정규 앨범 [Mercury – Act.1]에선 특별한 이름이 눈에 띈다.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전설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이다. 데뷔 앨범부터 전작 [Origins](2018)까지 그룹의 모든 앨범 작업을 함께한 프로듀서 알렉스 다 키드(Alex Da Kid)는 본작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새 앨범의 신선도는 보장된다. ‘변덕스러운’이란 뜻의 영어 단어 ‘mercurial’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앨범 제목처럼, 신보는 삶과 죽음, 상실과 외로움, 슬픔과 환희 등 다양하고 보편적인 소재를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담아냈다.



먼저 앨범의 표지를 보자. 앨범 커버 속 남성은 어딘가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맥없이 추락하는 듯한 모습은 아니다. 마치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듯, 팔다리는 위를 향하고 있다. 이 남성의 모델이 되었을 댄 레이놀즈는 새 앨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나의 밑바탕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그 안에서 자기 연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번 앨범은 다시 일어나 조치를 취하고 재건하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몇 년간 그가 겪은 고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댄 레이놀즈는 몇 번의 상실을 경험했다. 아내와 이혼의 위기를 겪는가 하면, 매니저가 지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각별했던 형수가 암 투병으로 세상을 떠난 건 특히 큰 충격이었다. 9남매 중 일곱째 아들로 자란 그는 10대 때부터 큰형의 형수에게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형수의 생전 마지막 문자가 그가 아내와 잠시 별거하던 시기에 그를 위로하고 축복하기 위해 보낸 문자였을 정도로, 형수는 그에게 커다란 존재였다. 형과 함께 형수의 임종을 눈물로 지켜본 그는 인생이란 얼마나 짧은지, 유한한 삶을 사는 동안 현재에 충실하고 자신과 주변의 행복에 집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새 앨범에는 이 기간을 통과해온 댄 레이놀즈의 각성이 가감 없이 담겼다. 그는 너무 솔직한 이야기가 꾸밈없이 앨범에 실리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프로듀서 릭 루빈은 듣는 이를 고려해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보단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독려했다. 그렇게 완성된 앨범의 첫 곡 ‘My Life’부터 심상치 않다.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힘들어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절절히 호소하는 ‘Lonely’, 형수의 사망 직후 애틋한 그리움을 써 내려간 ‘Wrecked’는 어떤가. 이는 로커로서의 인기, 명예와는 관계없는 한 인간의 처절한 외침이다.


아내와의 10주년을 기념하며 달콤한 사랑을 고백하는 ‘Monday’, 멋모르는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1’, 인연의 오감을 그린 ‘Easy Come Easy Go’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내와 이혼의 위기를 극복하고 재결합한 후에 만든 러브 송 ‘Follow You’와 오랫동안 댄 레이놀즈를 괴롭힌 자기혐오, 우울증에 맞서는 ‘Cutthroat’의 강렬한 대비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제는 아름다운 날을 즐기며 자신과 함께해줄 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는 ‘No Time For Toxic People’,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맹세하는 ‘One Day’에 이르면 이야기는 어둡고 쓸쓸했던 첫 두 곡 ‘My Life’, ‘Lonely’와 완벽한 대비를 이루며 그의 앞날에 희망을 품게 한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에 힘을 부여하는 건 완성도 높은 음악이다. 각 노래의 테마에 걸맞은 사운드 디자인, 멜로디가 메시지를 생생히 살려낸다. 서로 다른 보컬 라인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 ‘Lonely’, 전자음으로 귀를 자극하며 재미있는 리듬을 만든 ‘Monday’가 특히 인상적이다. 먼저 싱글로 공개된 ‘Follow You’, ‘Wrecked’의 서로 다른 캐치함은 이전의 ‘Thunder’, ‘Believer’에 비견할 만하다. ‘Dull Knives’, ‘Cutthroat’에선 댄 레이놀즈의 가창이 곡의 극적 구성과 어울려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No Time For Toxic People’, ‘One Day’의 밝고 생기 넘치는 선율은 앨범을 산뜻하게 끝맺는다.


[Mercury – Act.1]은 이매진 드래곤스의 가장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앨범이다. 용기를 내 진솔하게 눌러 쓴 노랫말과 이를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웰메이드 음악의 힘이다. 본작을 두고 누군가는 산만하고 응집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이 그렇지 않나. 매끄럽고 밀도 높은 인생이란 허상에 가깝다. 인간의 삶은 늘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와 사소한 행복, 즐거움이 반복되며 어지럽게 계속된다. [Mercury – Act.1]은 프런트 맨 댄 레이놀즈의 이야기를 통해 곧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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