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 애쓰고 있을 뿐
저명한 언어학 교수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가던 앨리스(줄리안 무어 분)가 초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국내외를 막론하고 알츠하이머를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신파로 흘러가지 않아요. 뛰어난 교수였던 그가 이루었던 모든 것들을 조금씩 잃어가는 모습,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앨리스(Still Alice)로 존재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더불어 영화에 쓰인 경음악들이 매우 좋습니다. 영화에 완벽하게 녹아들면서 줄리안 무어의 감정선을 그대로 이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기억에 남을만한 타이틀 트랙이 한 곡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영화 자체가 잔잔하고 고요한 톤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조율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알츠하이머'라는 진부한 소재 때문에 내러티브가 뻔하고 예상 가능한 것은 아쉽습니다. 급격하게 이야기가 역동적으로 전개된다거나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다거나 한 것은 없어요. 누구나 보면서 예상하는 대로 극은 흘러갑니다. 에너지 넘치고 당당하던 앨리스는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활기를 잃어가며 시들어가지요. 생각해보면 '알츠하이머'라는 질병 자체가 아직까지는 진행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완치가 되거나 병세가 완화되지는 않으니까, 영화 또한 그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앨리스 외에도 엄마의 만류에도 연기자를 지망하는 앨리스의 막내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나 이런 앨리스가 못마땅하며 엄마의 병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큰 딸 애나(케이트 보스워스) 등 조연들의 인물 설정도 적당히 입체적입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초점이 앨리스에 맞춰져 있지만 이러한 극적 요소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흔히 생각하는 불치병 드라마의 신파를 기대하고 극장에 간다면 실망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서도 오열하고 통곡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아요. 나와도 짧게 스쳐가는 정도. 그렇지만 긴 호흡으로 차분하고 섬세하게 감정선을 이어가는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대성통곡 보다 강한, 묵직한 감동을 주고 뻔한 이야기마저 상쇄시킵니다. 더불어 현재 자신의 순간들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