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울의 아들>을 보고.

남은 것은 가슴 먹먹한 슬픔이 아닌 세상이 무너져 내릴듯한 절망

by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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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2차 대전이 막바지로 향하던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중에서도 나치가 가스실에서 대량 학살한 유대인의 시체를 처리하는 임무를 맡은 유대인 특수직무반 '존더코만도'의 일원, 사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스실에서 어린 아들을 맞닥뜨린 사울은 아들의 시신을 다른 ‘토막’들과 같이 마구잡이로 화장시킬 수 없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던 그는 위험천만한 시도를 이어가게 됩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사울과 가까운 거리에서 사울에 포커스를 맞춘 채로 진행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자체인 수용소 내부의 참혹한 광경은 포커스 아웃된 흐릿한 배경으로 앵글에 걸리거나 오디오로 대체됩니다. 끔찍하고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그 비극의 무게감은 오롯이 전달한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들의 장례’라는 한 가지 주제만으로 스토리를 끝까지 밀어붙인 점도 특기할 사항입니다. 감독은 자극, 신파 등 쉽게 이목을 끌만한 장치를 걷어내고 테이크를 길게, 느린 호흡으로 아들을 잃은 아비 사울에 모든 것을 집중시켰습니다. 카메라 기법으로 능숙하게 완급조절까지 해내며 타이트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그 과정에서 진득한 감정의 울림이 발생합니다. 불친절하게 시작된 영화 내내 숨 가쁘게 사울을 쫓다가 영화의 말미에 가서야 ‘아…’하고 탄식을 터지게 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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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예술적 성취에는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정교한 연출의 공도 있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사울 역을 맡은 게자 뢰리히의 연기입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절규하며 오열해도 시원찮을 상황이지만, 수용소의 포로 신세인 그는 한 줌의 슬픔도 내비치지 못합니다. 오직 아들의 장례만을 위해서 시신을 빼돌리고 냉철, 이성적으로 장례를 도울 랍비(유대교의 목회자)를 찾아 헤매는 그의 기동력은 흡사 정예 요원을 방불케 합니다. 그러나 차가운 무표정에도 슬픔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두 눈동자는 분명 자식 잃은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게자 뢰리히는 생에 첫 영화인 <사울의 아들>에서 냉정한 이성으로 침착하지만 절박하게 분투하는 아버지 사울의 모습을 놀라우리만큼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사실상 영화의 모든 것이자 핵심인 사울 역이 이토록 탄탄하니 영화의 흡인력이 상당한 것은 당연한 결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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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나리오와 연기, 치밀한 연출이 합을 이룰 때 얼마나 어마어마한 작품이 탄생하는지 <사울의 아들>이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그 흔한 눈물 연기, 심금을 울리는 사운드트랙 없이도 영화는 명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후 남은 것은 가슴 먹먹한 슬픔이 아닌 세상이 무너져 내릴듯한 절망이었습니다.


(별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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