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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Apr 15. 2018

상념2

사람들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

1. 원고를 위해 에릭남 앨범을 듣다가 [딩고] 채널에서 방영하고 있는 리얼리티를 찾아봤다. 가수 에릭남으로서의 고민이 묻어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미국에서 애널리스트로 일 잘 하다가 음악이 좋아서 모든 걸 내려놓고 한국에 온 에릭남. 그정도로 음악이 절실했던 그는 한국에 와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톱5에까지 오르며 재능과 스타성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가수로서의 커리어는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 스타를 인터뷰하는 인터뷰어로서, 쇼 프로그램의 패널로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대중에게는 예능인처럼 인식되었다.


1-1. 보는 내가 답답할 정도였으니 본인은 오죽했을까. 좋은 목소리가 인터뷰에서만, 그것도 남을 인터뷰 하는 데서만 빛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엊그제 발매된 새 앨범 [Honestly]는 꽤 매력적이다. 달콤, 달달로 대표되는 평소 이미지를 모두 벗어던지고 시니컬하고 시크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숀 멘데스와 찰리 푸스의 중간 어디쯤으로 느껴지는 음악도 준수하다. 부드러움과 박력을 모두 갖췄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의 가요 앨범으로써는 매우 팝적이라는 것이 약점이랄까. EP로 나온 것이 아까울 정도로 괜찮은 앨범이다.


2. 하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딩고에서 리얼리티를 해도, 세로 라이브를 해도,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쳐도 순위는 미지근하다. 좋은 음악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면서, 음악 계통에서 일을 하면서 늘 느끼고 내린 결론은 이거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음악을 듣고 취미에 음악 감상을 쓰지만 실상 새로 나온 음악을 어느 정도 찾아 듣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이는 극소수다. 음악 감상이 취미라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좋아하던, 좋아해온 음악'을 계속 듣거나 '어딘가에서 화제가 된 음악', '남들이 듣는 음악'을 찾아 듣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에릭남이라는 브랜드가 그리 생소한 이름도 아니건만 "에릭남 앨범이 나왔네?" 하고 듣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얘기다.


2-1. 최근 문제된 닐로와 리메즈 엔터의 역주행 소동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비록 현재 역주행 중이 아닌 곡일지라도 수십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에서 "요즘 역주행하는 노래라던데!", "이 노래 너무 좋아서 역주행할 것 같다!"는 광고 아닌 광고를 하면 여기에 혹해 들어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리메즈 엔터의 방식은 이러한 동조 심리를 파고들고 교묘히 이용한 사례다. 비단 닐로와 리메즈 엔터만의 이야기는 아니나 이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때로 사람의 마음처럼 투명히 보이는 것이 없다.


3. 안타까운 일이지만 에릭남이 이번 앨범에서 드라마틱한 순위 반등을 꿈꾸기란 어려울 것이다. 소셜 미디어 어딘가에서 화제가 된다거나 방송에서 재미있게 활용된다면 모를까, 사람들은 여전히 에릭남의 음악을 모르고 지나갈 테고 다음 앨범을 제작하며 이번 앨범의 곡들을 들려줬을 때 '이런 노래가 있었어요?'라며 놀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도 이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한 번이라도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 제가 나중에 후회 안 할 것 같아요." 눈물나게 솔직했던, 가수 에릭남의 씁쓸한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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