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므라즈가 전하는 긍정과 사랑의 힘
지금의 에드 시런(Ed Sheeran) 이전에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가 있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노래와 랩을 하고, 포크 팝과 루츠 록, 펑크(funk)를 오가던 그는 2000년대 음악 팬들에게 각별하다. 비슷한 시기에 비교 대상이 됐던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잭 존슨(Jack Johnson)과 달리 그에겐 강력한 대중성이 있었다. 일렉트로닉 댄스와 힙합의 틈에서 일으켰던 ‘I‘m Yours’(2008)의 돌풍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에서도 수차례 단독 공연을 펼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란 칭호를 얻기도 했다.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은 ‘어루만짐’과 상통한다. 그는 2002년에 메이저 데뷔 앨범 [Waiting for My Rocket to Come]을 발표한 이래 꾸준히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The Remedy(I Won’t Worry)’(2002)를 시작으로 ‘I’m Yours’, ‘Lucky’(2008), ‘I Won’t Give Up’(2012)까지 이어지는 그의 레퍼토리는 그야말로 공감의 산물이다. 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뮤직 테라피스트’라는 별명을 붙여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에 밴드와 함께 사운드를 꾸리고 흡인력 강한 멜로디를 쓰는 솜씨는 그를 우리 시대의 어쿠스틱 팝 대표 주자로 격상한 요인이다.
여러 히트곡과 적잖은 음반 판매량을 통해 인기 대열에 합류한 그는 새로운 고민과 마주했다. 음악으로 돈을 벌고 사랑을 얻은 지금, 자신의 동기부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전 사람들이 제 노래를 그들의 감정 표현에 활용하도록 돕고 싶어요. 제 노래를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도 있죠.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노래는 화목을 위한 접착제 같은 존재이고요.” 음악을 시작하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의 새로운 목표는 더 높은 상업적 성과도, 흔한 트로피도 아닌 좀 더 세심하게 듣는 이의 마음을 보듬고 사람들의 삶에 양분이 되는 것이다.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본 작은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출발한 결과물이다.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노랫말이 보통의 이야기가 되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특유의 긍정적 태도와 가치관이 모여 사랑이 해답이라는 교훈으로 귀결된다. 각 노래에 담긴 주제의식은 소박하지만 모두의 일상에 보탬이 될 만한 것들이다. 음악적 구성 또한 인상적이다. 그는 “직전 앨범이 허브차였다면, 이번 앨범에는 카페인을 조금 첨가했다”는 독특한 비유를 통해 사운드의 발전을 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주 종목인 어쿠스틱부터 밴드와 현악기, 부피를 키운 음향까지 골고루 이용하며 듣는 즐거움을 챙겼다.
[Know.]
4년 만에 발매된 신보 [Know.]는 제이슨 므라즈의 지난 궤적을 아우른다. 여기에는 [Mr. A-Z](2005)의 재치,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2008)의 생동감, [Yes!](2014)의 유려함이 있다. [Love Is a Four Letter Word](2012)의 사랑관이 담긴 가사는 또 어떤가. 앨범의 제목은 전작 [Yes!]의 후속편처럼 보이도록 의도하면서, 부정적 의미인 ‘No’ 대신 발음이 같고 긍정적인 의미의 ‘Know’로 채택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지극히 그다운 발상이다. [Yes!]를 함께 만든 밴드 레이닝 제인(Raining Jane),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 비비 렉사(Bebe Rexha) 등과의 작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프로듀서 앤드류 웰스(Andrew Wells)가 그와 함께하며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첫 싱글 ‘Have It All’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다. 이야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에 여행을 간 제이슨 므라즈는 그곳의 한 승려로부터 ‘타시 텔레‘(Tashi Delek)라는 인사말을 들었다. ‘당신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지길‘이란 뜻의 말이 좋았던 그는, 이를 자신의 일기장에 옮겨놓고 가사로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단어를 바꿔가며 압운을 맞췄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라인이 첫 소절 “May you have auspiciousness and causes of success“다. 몇 달 뒤 송라이팅 세션을 통해 탄생한 이 노래는 ‘I’m Yours’의 리듬감과 ‘I Won’t Give Up’의 메시지를 두루 갖췄다. 리드 싱글로 부족함이 없다.
앨범의 면면에는 그만의 매력이 꿈틀댄다. ‘환한 달빛 아래서 당신과 숨고 싶다’ 고백하는 첫 곡 ‘Let’s See What The Night Can Do’에는 여러 겹의 화음과 공간감을 부여한 밴드 사운드로 낭만을 담았고, ‘친구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자‘ 말하는 ‘More Than Friends’에서는 메간 트레이너와 발랄하게 호흡을 맞추며 ‘Lucky’를 잇는 듀엣을 만들었다. 제이슨 므라즈가 스스로 가장 흡족히 여긴 곡 중 하나는 ‘Unlonely’다.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곡을 쓰고 싶었다”며 제작 동기를 설명한 노래에선 ’Geek In the Pink’(2005) 등에서 구사했던 랩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움을 더한다. 오래전부터 공연에서 불러온 ‘Sleeping To Dream’의 앨범 수록도 눈여겨볼 만 하다. ‘당신을 꿈에서나마 보기 위해 잠을 청한다’는 애틋한 노랫말의 이 곡이 스튜디오 음원으로 앨범에 실리는 것은 처음으로, 마니아들의 환호가 예상된다.
‘Have It All’ 외에도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곡은 또 있다. 결혼 생활에서 영감을 얻은 ‘Better With You’다. 2015년 10월에 결혼을 발표한 그는 “서로를 미치게 만들 때도 있겠지만, 이내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는 말로 결혼 생활을 설명했는데, ‘Better With You’의 예쁜 반주에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더 낫다’는 사랑 고백을 실어 눈길을 끈다. ‘Unlonely’와 함께 그가 신보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밝힌 ‘Might As Well Dance’는 컨트리의 요소를 펑키하게 구성한 곡으로, 뮤직비디오에서 결혼식 장면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Making It Up’은 ‘I Won’t Give Up’을 잇는 희망 송가다. 제이슨 므라즈의 오랜 파트너인 작곡가 밥 슈나이더(Bob Schneider)가 함께한 노래는 ‘고난에 굴복하지 말고 계속해서 꿈을 꾸며 인생을 만들어가자’는 치유의 언어로 또 한 번 긍정의 힘을 북돋운다.
음반을 닫는 ‘Love Is Still The Answer’는 사운드 디자인과 메시지 등 모든 면에서 종합적이다. 밴드와 스트링, 합창을 동원해 소리의 규모를 키웠고, ‘당신의 마음과 꿈이 산산이 조각났대도,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여전히 사랑이 해답이다’라는 후렴구 가사로 주제를 공고히 했다. 딕시 칙스(Dixie Chicks)의 ‘Not Ready To Make Nice’(2007), 아델(Adele)의 ‘Someone Like You’(2011) 등을 함께 만든 작곡가 댄 윌슨(Dan Wilson)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노래는 비교적 경쾌한 기조의 앨범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곡으로, 앨범을 마무리하는데 적격이다.
대체불가, 제이슨 므라즈!
과연 이름값을 하는 좋은 앨범이다. 어느덧 그도 중견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친근하게 자신의, 또 주변의 이야기를 하며 꿈과 희망, 사랑을 전하는 데 주력한다. 이 앨범에 절망과 좌절, 우울 같은 건 없다. 음악 또한 늘 그랬듯 수수하지만 쉽게 들어오고, 질리지 않고 오래 들을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다. 스스로의 강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자신이 사랑받은 지점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 결과다. 혹자는 큰 변화 없는 그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영리한 객관화와 타고난 재능, 부단한 노력 없이 이만한 입지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긍정과 활력으로 가득 찬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은 분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만의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