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재 Aug 31. 2018

[8 Letters]

보이 밴드 리바이벌의 신호탄이 될 데뷔 앨범

Why Don’t We [8 Letters]

정통파 미국형 보이 밴드의 등장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보이 밴드의 중심지는 미국이었다.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부터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와 핸슨(Hanson), 98 디그리스(98 Degrees)와 엔싱크(NSYNC)로 이어지는 흐름은 ‘틴 팝(Teen Pop)’을 정의했다. 테이크 댓(Take That), 보이존(Boyzone), 웨스트라이프(Westlife) 등 영국 출신의 인기 보이그룹도 있었으나, 영향력은 한정적이었다. 


이러한 판세가 뒤집힌 건 2010년대 초반의 일이다. 2012년에 데뷔한 영국의 원 디렉션(One Direction)이 세계를 집어삼킨 것이다. 글로벌 ‘원디(1D)’ 열풍은 미국의 체면을 구겼다. 2000년대 후반에 혜성처럼 등장했으나, 끝내 자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미국의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더구나 원 디렉션 이후 현재 보이 밴드의 맥을 잇고 있는 팀은 놀랍게도 한국의 방탄소년단이니, 미국으로선 과거의 영광이 무색한 상황이다.



최근, 한동안 잠잠하던 미국의 보이 밴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팀이 등장했다. 본 앨범의 주인공 와이 돈 위(Why Don’t We)다. 현재 팀과 멤버들의 소셜 미디어 계정은 각각 수백만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고, 주요 곡들의 유튜브 조회 수는 수천만에 이른다. 미국 각지에 살던 다섯 소년을 LA에 모아 2016년 9월에 팀을 결성하고, 그해 11월에 첫 EP를 낸 이래 1년간 5장의 EP를 부지런히 발표한 결과다. 신인으로선 이례적일 정도로 여러 장의 음반을 잇달아 내는 전략은 팬덤을 모으는 기반이 되었고, 곧 애틀랜틱(Atlantic) 레코드와의 계약으로 이어졌다. 가파른 성장세를 입증하듯, 2017년에는 [빌보드(Billboard)]가 선정한 ‘21세 이하의 차세대 음악 대표 주자’ 중 한 팀으로 꼽히기도 했다.


사실 이들은 와이 돈 위로 뭉치기 이전 이미 온라인의 유명인사였다. 맏형인 조나 머레이(Jonah Marais)와 콜빈 베슨(Corbyn Besson)은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인 ‘유나우(YouNow)’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열었고, 막내인 잭 헤론(Zach Herron)은 숀 멘데스(Shawn Mendes)의 히트곡 ‘Stitches’(2015)의 커버 영상으로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수백만의 조회 수를 기록한 바 있다. 잭 에이브리(Jack Avery)는 에드 시런(Ed Sheeran)을 커버한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이름을 알렸고, 다니엘 시비(Daniel Seavey)는 열다섯의 나이에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에 출연해 7위까지 올랐던 실력파다. 한 마디로 음악성과 스타성이 모두 검증된 인재들이 한 팀에 모인 것이다.



[8 Letters]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앨범 [8 Letters]에는 엔싱크를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보이 밴드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겼다. 우선 신인 보이 밴드 특유의 밝고 활기찬 트랙이 아닌, 보컬 하모니를 강조한 알앤비 곡들로 음반을 구성한 것이 눈에 띈다. ‘Nobody Gotta Know’(2016), ‘Trust Fund Baby’(2018) 같은 팀의 이전 곡들과도 거리가 멀다. 제드(Zedd), 닉 조너스(Nick Jonas) 등과 작업한 더 몬스터즈 & 스트레인저즈(The Monsters & Strangerz), 리아나(Rihanna), 비욘세(Beyonce) 등의 곡을 쓴 프린스 샬레즈(Prince Charlez),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찰리 푸스(Charlie Puth)와 함께한 모젤라(MoZella) 등 유능한 제작진이 선사한 음악 덕이다.


무르익은 그룹의 가창과 하모니도 만만치 않다. 앨범과 동명의 트랙 ‘8 Letters’를 보자. 번갈아 등장하며 매끄럽게 곡을 소화하는 솜씨가 이들의 일취월장을 증명한다. 록의 맛을 낸 ‘In Too Deep’에선 또래인 숀 멘데스가, 합창으로 소화한 후렴이 인상적인 ‘Friends’에선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같은 1990년대 보이 밴드가 연상된다. 부피를 키운 사운드 디자인에 풍성한 화음을 더한 ‘Hard’, 가장 소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Hooked’, 위켄드(The Weeknd) 식 알앤비 보컬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Falling’까지 듣는 재미가 풍성하다. 일정한 색채 아래 다양한 스타일을 끌어모은 앨범에서 불과 몇 달 전 EP에서도 들리던 앳된 음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댄스의 작법을 따른 ‘Talk’와 ‘Choose’도 주목할 만하다. 트로피컬 소스를 활용해 경쾌한 무드를 연출한 ‘Talk’는 언뜻 케이팝처럼 들리기도 해 흥미롭다. 어반 사운드를 추구하지만, 댄스 팝에도 약하지 않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마이너 코드의 댄스 팝 ‘Choose’는 이 팀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단조 음계와 힙합 비트를 활용한 골격, 유려한 멜로디와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에서 이들이 그토록 선망했던 엔싱크가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엔싱크의 히트곡 ‘It’s Gonna Be Me(2000)’의 영향이 느껴지는 노래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표하는 와이 돈 위의 트리뷰트처럼 들린다. 어쩌면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보이 밴드 리바이벌의 신호탄이 될 데뷔 앨범

사람들의 관심은 앞으로 원 디렉션이 물러난 왕좌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에 쏠려있다. 이 자리를 두고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있는 방탄소년단과 엔싱크의 후예를 자처한 미국형 보이 밴드 와이 돈 위가 겨루는 형세다. 이들 또한 이러한 주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걱정보다 기대가 크다. 과거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 98 디그리스와 엘에프오(LFO)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보이 밴드 전성시대의 재림을 꿈꾸는 것이다.


달콤한 꿈은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방탄소년단은 진작 주류 궤도에 진입했고, 와이 돈 위 뒤에 등장한 프리티머치는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미 어느 정도의 팬덤을 확보한 와이 돈 위는 본 데뷔 앨범 [8 Letters]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노린다. 탄탄한 기본기 아래 팀의 색깔과 매력적인 곡을 두루 갖춘 음반은 여러모로 다른 팀들의 자극제가 될 만하다. 얼마 전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에 다녀간 이들은 음반 발매 후 오스트레일리아와 유럽 투어를 개최하며 글로벌 행보도 이어간다. 한참 가라앉아 있던 보이 밴드 시장에 와이 돈 위와 함께 새 바람이 분다. 재미있는 판이 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Kno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