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가 공동으로 기획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과 리뷰에 참여했습니다. 리스트는 8월 28일부터 한 달 동안 매주 화요일, 금요일 정오에 멜론에서 열 장씩 공개됩니다. 가을에는 도서로도 출판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바랍니다.
2000년대 중반 가요계를 휩쓴 ‘소몰이 창법’ 열풍을 기억한다. 2004년 데뷔한 에스지 워너비(SG Wannabe)를 필두로 바이브, 엠투엠, 박효신, 휘성, 씨야 등 수많은 가수가 스탠더드 팝과 분리된 알앤비 보컬을 구사하며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획일화된 음악 스타일과 감정 과잉 창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당대의 인기 차트는 그들의 차지였다.
잇따라 등장한 그들의 시작점에는 남성 듀오 브라운 아이즈가 존재한다. 3인조 걸그룹 디바, 디제이 디오씨(DJ DOC)의 멤버 김창렬 등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윤건과 알앤비 그룹 앤썸(Anthem)으로 음악계에 발을 들인 나얼로 이루어진 브라운 아이즈는 팀 이름부터 본토의 소울을 지향했다. 백인이 부르는 소울 음악이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면 동양인의 소울 음악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 줄여서 ‘브라운 아이즈’란 자신감의 발로였다.
당찬 그룹명은 허풍이 아니었다. 이들의 성취에는 음반에 수록된 14곡 중 대부분의 곡을 쓰고 편곡한 윤건의 송라이팅이 주효했다. 미국의 알앤비, 힙합 작법에 한국식 발라드의 요소를 절묘하게 조화한 음악은 그야말로 ‘브라운 아이드 소울’에 다름없었다. 보컬 프로듀싱, 코드 워크와 비트 메이킹의 측면에서 흑인 음악에 밀접하게 다가서는 한편, 선명한 곡의 진행과 후렴을 통해 대중성을 거머쥐는 전략이었다. 각각 015B와 김정호의 원곡을 재해석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두 번째 이야기’와 ‘하얀나비’ 역시 윤건의 편곡을 통해 이들만의 색깔로 거듭난 수작이었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나얼의 능란한 보컬 퍼포먼스였다. 위아래로 막힘이 없는 음넓이와 진성과 가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교, 탁월한 강약 조절과 섬세한 표현력 등 보컬리스트로서 나얼의 역량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에 앞서 대중에 알앤비 보컬을 소개한 유영진과 김조한, 박정현 등과 같이 실력과 개성을 두루 갖춘 목소리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가창을 들려준 윤건은 비교적 담백한 음성으로 나얼과 하모니를 이루며 콤비 플레이를 펼쳤다.
탄탄한 음악적 완성도는 곧장 상업적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기획자의 뜻대로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한 이들의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돌풍을 일으켰다. 차트 정상을 차지한 타이틀곡 ‘벌써 일년’부터 ‘그녀가 나를 보네...’, ‘언제나 그랬죠’, ‘With Coffee’ 등이 차례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당대 유행에 따라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한 ‘벌써 일년’, ‘With Coffee’의 뮤직비디오 또한 끊임없이 음악 전문 채널의 전파를 탔다. 결국 <Brown Eyes>는 팀의 이렇다 할 방송 홍보 없이도 앨범이 출시된 2001년에만 50만 장이 넘게 팔리는 대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이듬해 정규 2집 <Reason 4 Breathing?>을 끝으로 잠정 해체에 돌입했다. 6년이 지난 2008년에 발매한 3집이 현재까지 나온 팀의 마지막 작품이니 듀오로서의 활동량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사에서 브라운 아이즈와 본 앨범의 의미는 남다르다. <Brown Eyes>를 기점으로 알앤비와 소울이 한국 음악 시장의 주요 장르로 부상했고, 나얼이 등장한 뒤로 그의 창법을 좇는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혜성처럼 등장해 이후 10년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실로 역사적인 데뷔 앨범이다.
* 추천 곡 : ‘벌써 일년’
‘얼굴 없는’ 신인 가수의 데뷔곡이라기엔 흥행의 규모가 대단했다. 각종 차트를 장악한 것은 물론, 라디오와 텔레비전 곳곳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훗날 윤건은 음반 발매 1주일 만에 길거리에서 ‘벌써 일년’을 듣고 인기를 실감했다고 회상했다. 배우 김현주와 장첸을 앞세운 뮤직비디오도 화제였지만 좋은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 들리는 멜로디와 나얼과 윤건의 보컬 하모니, 이근형의 기타 연주가 빈틈없는 합을 이뤘다. 가히 ‘한국형 알앤비’의 최고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