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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Dec 28. 2018

이곡만은 듣고 가 #8

겨울의 한가운데

새삼 한국의 날씨가 놀랍다. ‘역대급’ 폭염을 겪은 지 채 6개월도 안 됐는데, 이제는 고약한 한파와 맞서고 있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고생길을 각오해야 한다. 마냥 좋기만 하던 어린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래도 겨울이라 좋은 것도 있다. 따끈따끈 군고구마 같은 겨울 간식, 적막한 겨울밤을 채워주는 감수성 가득 겨울 노래들이 그렇다. 저마다 다른 겨울 풍경을 노래한 8곡으로 추위를 달래보자.



정용화, 선우정아 – ‘입김’ | [교감](2016)

날씨가 추워지면 이 노래 생각이 난다. 제목처럼 입김이 나는 날이면 자연스레 재생 목록에 오른다. 추운 겨울날 연인과 함께했던 소박한 추억을 떠올리는 두 남녀는 이제는 전할 수 없는 안부를 입김으로 대신한다. 번갈아 가며 선율을 리드하는 정용화와 선우정아의 호흡,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두 사람의 하모니가 귓가에 맴돈다. 정용화가 작곡한 ‘입김’은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로서 그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어떤날 – ‘겨울 하루’ | [1960·1965](1986)

잠시 상상해보자. 하루 종일 눈이 내린 날, 우두커니 누워서 눈을 쓰는 싸리비 소리를 듣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지루한 겨울 낮잠에서 깨고 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고 어두운 냉기만이 살결에 닿아 내 몸을 흔든다면? 어떤날의 ‘겨울 하루’는 쓸쓸함, 고독, 지루함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이런 상황을 그렸다. 이병우, 조동익 듀오의 어떤날은 그룹 이름처럼 우리 일상에 있을 법한 ‘어떤 날’에 대한 관조적인 노래를 많이 남겼다.



이소라 – ‘겨울, 이별’ | [Diary](2002)

겨울에 이별하면 이런 감정일까. 노래 속 화자는 헤어지는 마음이 시린 건지 ‘살을 파고드는 바람’이 차가운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날에 연인과 작별한다. 겨울눈이 투명하게 춤을 추는 평화로운 오후에 초라한 얼굴로 시린 눈을 감추며 이별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노래에는 찌르르한 그 심경이 차분하게 적혀있다. 섬세하고 시적인 언어로, 독보적인 가창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이소라의 겨울 발라드.



종현 – ‘따뜻한 겨울’ | [종현 소품집 ‘Op. 2’](2017)

모순된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자는 곁에 네가 있어서 코트에 목도리, 스웨터, 벙어리장갑 그런 게 없어도 전혀 안 춥다고 한다. 노래의 후반에는 ‘덕분에 내 평생이 따뜻’하다고까지 말한다. 언뜻 사랑 노래처럼 느껴지는 가사는 오랜 시간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내용으로 종현이 직접 썼다. 따뜻한 악기 구성과 종현의 산뜻한 목소리, 구어체로 전하는 진심 어린 사랑 고백이 매력적이다.



정승환 – ‘그 겨울’ | [목소리](2016)

2015년 SBS [K팝스타 4]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정승환은 차세대를 이끌 발라드 주자로 꼽힌다. 그가 부른 tvN 드라마 [또 오해영](2016)의 사운드트랙 ‘너였다면’은 드라마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겨울’은 ‘너였다면’을 작곡한 작곡 팀 1601이 곡을 쓰고 유희열이 가사를 붙인 곡이다. 전형적인 발라드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음악과 지극히 유희열다운 극적 노랫말이 마음을 울리는 노래다.



이정석 – ‘첫눈이 온다구요’ | [’86 MBC 대학가요제 Vol.2](1987)

시대를 막론하고 첫눈은 설렘의 상징과 같다.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는 이러한 감정을 드라마틱한 구성에 담아내 큰 인기를 끌었다. 젊은 세대에게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 삽입곡으로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이정석의 가창도 빼어났지만, 후렴에서 템포를 높이며 감흥을 극대화하는 작법은 대학생의 솜씨라기엔 믿기 어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는 프로 작곡가 이범희가 대리 작곡한 곡이었다.



딕펑스 – ‘안녕 여자친구’ | [Hello Goodbye](2013)

정직한 제목만큼이나 생생한 노랫말이 특징인 곡이다.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2001),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2014) 등을 쓴 심현보가 작사, 작곡에 참여해 흡수력을 높였다. ‘지난겨울 니가 골라준 포근한 카멜색 코트’, ‘밤새 둘이서 거닐던 연남동 골목’처럼 생활에 밀착된 가사가 듣는 이의 공감과 몰입을 돕는다. 맑은 목소리로 덤덤한 듯 부르는 김태현의 목소리가 더욱 애타게 들리는 이유다.



자이언티 – ‘눈(Feat. 이문세)’ | [눈](2017)

얼마 전 첫눈이 내렸을 때 실시간 차트에 오른 곡은 다름 아닌 이 노래였다. 자이언티와 이문세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노래는 발매 직후부터 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디선가 반드시 들리는 곡이 됐다. 물론 라디오에도 신청이 쇄도한다. 개성 강한 두 사람의 보컬이 재즈풍 반주와 근사하게 어울리며 케미스트리를 발휘했다. 특히 자이언티의 말하듯 부르는 창법을 멋지게 소화한 이문세의 활약이 컸다. 이문세는 이 노래를 통해 신세대로 접속했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 살고 있지만, 나만을 위한 알짜 정보는 놓치기 쉽다. 음악도 그렇다. 하루에 발매되는 노래만 100여 곡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모두 들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늘 뭐 듣지?’ 고민하는 당신, 여기 있는 노래만 들어도 당장의 고민은 해결이다.


* 텐아시아 뷰티텐 2019년 01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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