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여왕 마돈나의 새로운 문제작
팝 음악 역사에서 공인된 여왕은 마돈나 한 명뿐이다. 1982년 데뷔 이래 37년간 기록한 압도적 흥행 실적이 그 위상을 입증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여성 아티스트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투어 수익을 올린 솔로 가수다. 지금까지 약 3억 장에 달하는 음반을 판매했고, 콘서트 투어로 벌어들인 돈이 1조 원을 넘는다. 빌보드 핫 100 차트 50년 역사에서 비틀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성공을 거둔 가수 역시 그다. 마돈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다.
그런 그의 지난 10년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상업적 흥망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그는 세 번에 걸쳐 대규모 월드 투어를 개최했고, 성공적으로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를 꾸렸으며, 두 장의 정규 앨범으로 차트 1, 2위에 올랐다. 3개의 빌보드상을 탔고, 직접 극본을 쓰고 제작, 감독한 영화 [W.E.](2011)의 주제곡 ‘Masterpiece’로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으며, 2016년에는 빌보드에서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됐다.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아티스트란 그의 명성은 겉보기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건재한 것이 문제였다.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대담했던 팝스타는 미디어와 대중의 집중 타깃이 됐고, 라디오는 그의 신곡을 선곡하길 꺼렸다. 사람들은 섹시하고 강인하며 일탈을 서슴지 않는 ‘팝의 여왕’을 곱게 보지 않았다.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의 성 관념, 보수적 종교 집단 등과 줄곧 부딪혔던 그는 또 다른 장애물과 직면했다. 나이든 이는 그저 점잖고 정숙하길 요구하는 사회적 ‘연령 차별주의(ageism)’였다.
물론 마돈나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Girl Gone Wild’(2012), ‘Bitch, I’m Madonna’(2015) 등 파격은 계속됐다. 공식 석상에서는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 과감한 의상으로 불씨를 지폈고, 의도적으로 그의 신곡을 배제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BBC 라디오1을 매섭게 비판했다. 음악의 테두리 밖에서는 여성 행진과 총기 규제 시위에 동참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근래의 마돈나는 여느 때보다 강경했다.
연령차별과의 결사 항전은 철의 여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2016년 빌보드가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상을 받고 10여 분간 연설하며 이따금 울음을 삼켰다. “날 의심했던 사람들, 반대론자들, 내게 지옥을 안겼던 이들, 나에게 할 수 없다고, 하지 말라고, 해선 안 된다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들의 방해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더 노력하게 했고, 지금과 같은 투사로 만들었다. 지금과 같은 여성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감사하다.” 눈물을 머금고 끝낸 수상 소감은 앞으로도 소신을 굽히지 않으리란 선언과 같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여왕의 차기 행보는 지난 4월 14일에 공식화됐다. 마돈나는 이날 ‘마담 엑스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제목의 트레일러를 통해 새 앨범의 타이틀 [Madame X]를 발표했다. ‘마담 엑스(Madame X)’는 전설적인 무용수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이 그에게 춤을 배우던 열아홉 살의 마돈나에게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다. 영상 속 마돈나의 설명에 따르면 앨범의 주인공 마담 엑스는 다음과 같다.
“마담 엑스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신분을 바꾸고, 자유를 위해 싸우며,
어두운 곳에 빛을 가져다주는 비밀 요원이다.”
또한 마담 엑스는 댄서이자 교수, 국가 원수, 주부, 승마자, 죄수, 학생, 어머니, 아이, 교사, 수녀, 가수, 성인(聖人), 매춘부, 스파이다. 이 많은 키워드를 관통하는 한 사람이 마담 엑스, 바로 마돈나다. 그가 돌아왔다.
Inside of [Madame X]
마돈나는 지난 2년간 대부분 시간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보냈다. 포르투갈의 축구팀 SL 벤피카(S.L. Benfica) 유소년팀에 입단한 아들 데이비드 반다(David Banda)를 위해서였다. 졸지에 사커 맘(soccer mom)이 된 그는 리스본에 정착하고 얼마간 우울했다고 한다. 자녀들을 돌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에 무료함을 느낀 그는 함께 시간을 보낼 이들을 찾아 나섰고, 이내 포르투갈의 예술가들과 인맥을 형성했다. 음악가, 화가들의 집에 초대받은 마돈나는 각자 와인과 음식을 가져와 식탁에 둘러앉아서 즉흥으로 연주와 노래를 하는 그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이때의 영감은 곧 새 앨범의 자양분이 됐다.
신보의 성격을 좌우한 또 다른 계기는 전작에 있다. 지난 두 앨범 [MDNA](2012)와 [Rebel Heart](2015)를 ‘송라이팅 캠프’를 통해 제작한 그는 이 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여러 명의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협업하는 송라이팅 캠프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오가는 탓에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청사진을 그리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그는 이전과 같이 소수 정예로 드림팀을 꾸렸다. [Music](2000)과 [American Life](2003)의 주요 파트너였던 프랑스 출신 뮤지션 미르웨(Mirwais)를 필두로 디플로(Diplo), 제프 배스커(Jeff Bhasker), 스타라(Starrah) 등 쟁쟁한 히트 메이커들이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새 앨범 [Madame X]는 마돈나의 지난 세월을 아우른다. 그를 대표하는 최신 사운드와 캐치 멜로디, 세상 구석구석을 향한 관심이 한 장의 앨범에 모였다. 말하자면 ‘팝 아이콘 마돈나’와 ‘사회운동가 마돈나’가 공존하는 식이다. 수록곡 면면에는 리스본 거주 시기의 영향이 감지된다. 포르투갈의 민속 음악인 파두(fado)와 현대의 라틴 팝에서 힌트를 얻은 곡들이 주를 이루는 한편, 아예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 녹음된 소절을 포함한 곡도 있다. 여기에 클래식과 오페라, 디스코의 요소를 배합한 전위적 아트 팝이 예상치 못한 재미를 안기며 인상을 남긴다. 마돈나의 앨범을 통틀어 가장 실험적인 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현안에 관한 자기 생각을 앨범 전반에 걸쳐 담은 것도 특징이다. 돌이켜 보면 ‘Papa Don’t Preach’(1986), ‘Like A Prayer’(1989), ‘Erotica’(1992), ‘American Life’(2003) 등 사회적 문제를 노래로 다룰 때도 음반 전체의 내러티브는 비교적 편안한 감상에 중점을 두지 않았던가. 반면 [Madame X]는 작가주의 성향이 뚜렷하다. 총기 규제, 성 소수자, 이슬람, 가난 등 다양한 쟁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서로 다른 어조로 의견을 피력했다. 이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어두운 곳에 빛을 가져다준다’는 마담 엑스의 설정과도 부합한다.
앨범에서 가장 놀라운 곡은 단연 ‘Dark Ballet’와 ‘God Control’이다. 지난해 멧 갈라(Met Gala) 특별 공연에서 일부분을 공개했던 ‘Dark Ballet’는 나라를 구하고도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잔 다르크의 생애에서 영감을 얻었다. 노래는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 후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갈대피리의 춤’을 샘플링한 대목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1971년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가 클래식을 활용한 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에마누엘 아드제이(Emmanuel Adjei) 감독과 마돈나가 공동으로 연출하고 퀴어 래퍼 미키 블랑코(Mykki Blanco)가 열연한 뮤직비디오는 잔 다르크의 화형식을 테마로 영화에 버금가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God Control’의 표적은 총기 규제법(gun control)에 소극적인 미국의 정치 집단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다. 마돈나는 총기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절망감과 무력감을 노래하며 대중을 자극, 선동한다. 6분이 넘는 대곡에서 그는 상반된 사운드를 나란히 배치해 메시지를 선명하게 부각했다. 누군가 입을 틀어막은 듯 웅얼거리는 1절과 장엄한 합창 브리지, 너무나 발랄해서 섬뜩하게 들리는 디스코는 극명한 색채 대비를 이루며 가사에 힘을 싣는다. 댄스 클럽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를 직접 묘사한 뮤직비디오는 노래와 더불어 의미의 상승효과를 노린다.
토속적, 주술적 분위기를 연출한 ‘Batuka’ 또한 범상치 않다. 마돈나의 선창에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바투카데이라스 오케스트라(The Batukadeiras Orchestra)가 후창하는 노래는 그가 리스본에 가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곡이다. “그 늙은 남자를 잡아다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외치는 가사를 두고는 맥락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인데, 교묘히 빠져나갈 여지를 남기면서도 누구나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화법이 과연 마돈나답다. 파두의 흔적이 또렷한 ‘Killers Who Are Partying’은 어떤가. 게이, 아프리카, 빈민, 아이, 이슬람, 여성 등 상대적 약자의 처지에 이입하며 세상에 관심을 촉구한 가사는 중견에 이른 지금의 마돈나이기에 쓸 수 있는 강력한 노랫말이다.
팝적인 터치로 사회적 이야기를 끌어낸 곡도 있다. 힙합 트리오 미고스(Migos)의 멤버 퀘이보(Quavo)가 참여한 레게톤 트랙 ‘Future’는 중독성 강한 비트에 맞춰 모든 사람이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의 미래가 담보된 것도 아님을 경고한다. 도입부에 2018년 미국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 엠마 곤살레스(Emma Gonzalez)의 연설을 넣은 ‘I Rise’도 그렇다. 앨범의 마지막에 실린 노래는 반복되는 후렴을 통해 약자들의 앤섬(anthem)을 자처하며 역경에도 쓰러지지 않고 결국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한다.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팝송도 있다. 가장 먼저 공개된 ‘Medellín’이 대표적이다. 콜롬비아 팝스타 말루마(Maluma)가 함께한 이 곡은 1986년 히트곡 ‘La Isla Bonita’부터 꾸준히 시도한 마돈나 라틴 팝의 정점이다. 적당한 템포에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법한 ‘원 투 차차차’ 코러스로 녹슬지 않은 대중 감각을 뽐냈다. 힙합 듀오 레이 슈레멀드(Rae Sremmurd)의 멤버 스웨 리(Swae Lee)가 함께한 트랩 발라드 ‘Crave’, 아코디언을 활용한 이국적 소리 풍경과 포르투갈어를 포함한 후렴이 재밌는 ‘Crazy’, 산뜻한 곡조와 리듬감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Come Alive’도 매력적이다. ‘I Don’t Search I Find’는 [Confessions On A Dance Floor](2005) 이후 뜸했던 마돈나의 현대적 디스코를 그리워한 팬들에게 선물이 될 만한 곡이다.
브라질의 팝 스타 아니타(Anitta)가 함께한 ‘Faz Gostoso’는 ‘Medellín’과 함께 라틴 시장 공략에 적합한 전략적 선곡이다. ‘Faz Gostoso’는 본래 포르투갈 가수 블라야(Blaya)가 2018년에 발표해 포르투갈 차트 1위에 올랐던 노래로, 마돈나와 아니타의 버전은 원곡의 인기를 증명하듯 발매 직후 브라질에서 스트리밍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Rebel Heart]의 ‘Bitch I’m Madonna’가 떠오르는 ‘Bitch I’m Loca’는 느긋한 ‘Medellín’과 정반대 지점에서 말루마와 강렬한 호흡을 보여주는 댄스곡이다. 역시 라틴 문화권에서의 호응을 기대해볼 만하다.
관록이 빛나는 마돈나의 문제작
마돈나는 최근 패션지 보그(Vogue)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겐 살아있는 롤 모델이 없어 서글프다는 이야기를 했다. 맞다. 마돈나 이전에 그와 같은 가수는 없었다. 20대부터 30, 40, 50대를 거쳐 60대가 되어서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 팝 감각을 뽐낸 이는 없다. 동시에 매 순간 그 시대의 관습과 기득권 세력에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운 이도 많지 않다. 마돈나가 가는 길은 곧 팝의 새 역사다.
그래서 마돈나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팝 장르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우리는 시대를 풍미하고도 이내 빛을 잃고 과거의 영광에 갇히는 왕년의 팝 스타들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다. 반면 마돈나의 정규 14집 [Madame X]는 부지런히 세상을 관찰하고 동향을 파악하며 완성한 문제작이다. 음악과 영상은 감각적이고 메시지와 담론은 거침없다. 여전히 반짝이는 거장의 창의력과 시대감각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