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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Nov 04. 2019

마돈나가 무릎 보호대를 했다

좋아하는 스타가 나이 든다는 건 어쩐지 서글프다.

어려서부터 난 춤을 잘 추는 가수를 좋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유승준에게 끌렸고 마이클 잭슨과 재닛 잭슨에 사로잡혔다. 결정적인 건 마돈나였다. 잭슨 남매와는 또 다른 안무 스타일에 매번 색다른 콘셉트의 퍼포먼스, 메시지가 강한 음악에 매료됐다. ‘입덕’의 계기는 뮤직비디오였다. 나는 케이블 음악 채널에서 황야의 검은 마녀로 분한 ‘Frozen’(1998)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보고 마돈나에게 빠졌다. 그 후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2016년 2월 13일 마돈나의 일본 공연


애석하게도 마돈나는 한 번도 한국을 찾은 적이 없다. 40년에 가까운 활동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내한 공연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음악 팬들에게 마돈나는 영원한 염원의 대상이다. 마니아로서 언제까지 발만 구르며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결국 나는 지난 2016년, 영상으로만 보던 마돈나를 실제로 보기 위해 일본에 갔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공연 시간 2시간이 마치 2초처럼 짧게 느껴졌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공연장을 빠져나오며 나는 결심했다. 비록 지금까지의 공연은 모두 놓쳤지만, 앞으로 마돈나의 투어는 반드시 빠짐없이 출석하리라고.



마돈나가 새로운 투어를 시작했다. 2016년 3월에 <Rebel Heart> 투어를 끝낸 지 3년 반 만이다. 이번 공연은 규모 면에서 특별하다. 90회에 걸쳐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열리는 <Madame X> 투어는 모두 대극장에서 이뤄진다. 1회당 입장 관객은 2,000명 내외, 많아도 5,000명을 넘지 않는다. 1985년 첫 콘서트 투어를 시작한 이래 늘 아레나와 스타디움에서 수만 명을 가득 채우고 공연하던 그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Madame X> 공연 현장


이는 전적으로 마돈나의 뜻이었다. 항상 거대한 공연장에서 수많은 인파를 두고 노래를 하다 보니 관객과의 밀접한 소통이 그리워졌단다. 지난 투어에서는 매번 관객이 참여하는 꼭지를 만들고 아예 작은 공연장에서 코미디 쇼를 겸한 특별 공연을 열기도 했지만, 갈증이 해소되진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평소 공연보다 티켓 가격을 3배가량 올리는 강수를 두며 극장 공연을 시작했다. 좌석값은 최저 30만 원, 최고 70만 원에 육박한다.


몇 주 전, 투어의 첫 번째 도시였던 뉴욕에서의 공연이 모두 끝났다. 16회 동안 총 3만여 명이 관람했고, 마돈나는 약 963만 불을 벌어들였다. 한화 112억 원이 넘는 돈이다. 당연하게도 전 회, 전 석 매진을 기록했다. 예정 시각을 2시간 이상 넘겨 공연을 시작하는 ‘마돈나 타임’ 등 적잖은 잡음에도 극찬이 끊이질 않았다. 여성 인권, 총기 규제와 같은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무대의 벽면 전체를 스크린으로 활용해 공간적 한계를 허물고, 시시각각 바뀌는 영상과 조명으로 한 편의 영화와 같은 공연을 연출했다고 한다. ‘극장 공연의 신기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Madame X> 공연 중 마돈나. 무릎 보호대가 보인다.


내게 놀라운 소식은 따로 있었다. 마돈나가 무릎 보호대를 하고 무대에 올랐으며, 10월 7일 공연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 끝내 취소됐다는 뉴스였다. 공연장 내 휴대폰 사용을 철저하게 금지해 관객들의 ‘직찍’을 찾긴 어려웠지만, 정식으로 공개된 현장 사진에서 그는 정말 무릎 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댄스 가수의 부상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된 완벽주의자 마돈나의 부상은 낯설었다. 그는 자신의 채널을 통해 공연 취소를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마담 엑스 또한 사람이며 앞으로 3일간 회복을 위해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난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이 아프다. 이제 하이힐과 망사 스타킹을 며칠 동안 벗어야 할 시간이다. 이해해줘서 감사하다. 곧 다시 만나자.”


공연 취소를 알린 마돈나의 채널


마돈나는 약속대로 단 하루 공연만 취소하고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한 표정으로 이전처럼 관객을 만났다. 퍼포먼스의 변화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그는 뉴욕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시카고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공연마다 반응은 식을 줄을 모른다. 부상으로 하루를 쉬고 무릎 보호대를 했어도 마돈나는 마돈나다. 그는 여전히 대체 불가의 존재다.


다만 오랜 팬으로서 마음 한구석이 조금 시렸다. 내 기억 속 마돈나는 언제나 철의 여인이었다. 천하를 호령했던 20대, 30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불혹을 넘기고 50대가 되어서도 위풍당당한 모습엔 변함이 없었다. 꿈에만 그리던 우상의 공연을 마침내 직접 봤던 그때도 그의 나이는 59세였지만 마치 39세처럼 팔팔했다. 그 공연을 보며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거뜬하리라 생각했다. 그런 마돈나가 무릎 보호대를 했다. 지금도 그는 보호대를 착용하고 무대에 오른다. 경력과 나이를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왠지 속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시대를 빛낸 별들이 대거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잭슨, 에이미 와인하우스, 휘트니 휴스턴,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레너드 코헨, 조지 마이클, 크리스 코넬, 아비치, 아레사 프랭클린, 릭 오케이섹... 모두 우리 곁에 영원할 것 같았던 이름이다. 이들을 생각하면 무릎 보호대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마돈나마저 무릎에 신경 쓸 시점이 됐다니 괜히 마음이 무겁다. 이번 투어가 끝나면 지금 같은 퍼포먼스는 무리일 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스타가 나이 든다는 건 어쩐지 서글프다.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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