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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Apr 09. 2020

같이 듣고, 같이 추다

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3호 기고

청하, 크러쉬, 이효리, 화사, 성훈, 기안84, 장성규. 유명 인사라는 것 외엔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모두 같은 춤을 췄다. 이뿐만이 아니다. 적어도 수천, 어쩌면 수십만의 인구가 춤으로 하나 됐다. 2020년 벽두를 강타한 지코의 ‘아무노래’(2020)를 통해서다.


지코 '아무노래'


지난 5년간 지코의 대중 감각은 익히 증명됐다. 그는 2014년 솔로 데뷔 이래 거의 해마다 히트곡을 냈다. 비록 지난해 발매한 첫 정규 앨범이 기대 이하의 성과에 그쳤지만, 그가 트렌드를 읽어내는 영리한 눈을 가진 뮤지션임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노래’에는 작년을 만회하기 위한 절치부심이 담겼다. 여느 때보다 캐치한 멜로디, 담백하고 재치 있는 가사가 돋보였다.


‘아무노래’의 흥행을 이끈 결정적 요소는 춤이었다. 아티스트는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한 뮤직비디오와 노랫말과 호응하는 간편한 안무를 따로 마련했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 안무는 숏폼(short-form) 비디오 플랫폼 ‘틱톡’에서 선보였다. 둘은 같은 곡을 재료로 한 콘텐츠이지만, 지향하는 지점이 분명히 달랐다. 뮤직비디오가 전통적 방식의 홍보물이었다면, 틱톡의 비디오는 새 시대의 문법이었다.



지코는 틱톡에서 ‘챌린지’를 앞세웠다. 사용자가 카메라 앞에서 ‘아무노래’의 1절에 맞춰 50초가량 춤을 추고 틱톡에 올리자는 일종의 미션이었다. 그는 화사, 청하, 장성규 등 인기 셀러브리티를 대동해 시범을 보였고, 여기에 이효리, 크러쉬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본격적인 붐이 형성됐다. 곡 제목 그대로 ‘아무노래 챌린지’라는 이름이 붙은 이 놀이에 수많은 이들이 동참했다. 틱톡에서 ‘아무노래 챌린지’ 관련 영상의 조회수를 모두 합치면 8억이 넘는다. 유튜브의 공식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3천만을 밑도는 것과 대조적이다.


마케팅 효과는 상당했다. ‘아무노래’는 1월 13일 발매 이후 한 달 넘게 차트 1위를 지켰다. 국내에선 처음 보는 성공 방식이었다. 지코 이전 대중에 인식된 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전부였다.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코에 앞서 현아, 박진영 등이 발 빠르게 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지코는 처음으로 성공적인 챌린지의 사례를 만들었다.



◆ ‘게임체인저’가 된 ‘틱톡’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틱톡과 챌린지가 음악계의 주요 마케팅 방식이 된 지 오래다. 틱톡이 미국의 립싱크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뮤지컬리’를 인수하고 앱을 합친 2018년이 그 기점이다. 이전까진 짧은 길이의 동영상을 분별없이 올리는 앱이었던 틱톡이 음악과 결합하며 시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코미디언 쉬기(Shiggy)의 영상이 유행하며 빌보드 10주 1위까지 달성한 드레이크(Drake)의 ‘In my feelings’(2018)는 챌린지가 효과적인 홍보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이 방식으로 무명에서 단숨에 슈퍼스타가 된 경우도 있다. 미국의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다. 인터넷 문화에 정통했던 1999년생 아마추어 뮤지션은 처음부터 챌린지를 치밀하게 의도, 기획했다. 소재 선정부터 영리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2018년부터 유행의 기미가 보였던 카우보이 문화, ‘이햐 담론(yeehaw agenda)’에 주목했다. 곧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 카디 비(Cardi B) 등 인기 스타들의 행보에 따라 카우보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지는 타이밍을 노렸다. 그는 야심작 ‘Old town road’(2018)에 향토적인 가사와 컨트리 사운드, 트렌드에 걸맞은 힙합 리듬에 모두가 쉽게 따라 할 만한 몸동작까지 탑재했다. 오직 히트를 위한 결과물이었다.


릴 나스 엑스(Lil Nas X)


만반의 준비를 끝낸 릴 나스 엑스는 틱톡으로 직행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구독자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였던 그는 팔로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활용한 ‘이햐 챌린지(yeehaw challenge)’를 전파했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단순한 놀이에 대중은 열광했다.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 디플로(Diplo) 등의 피처링은 곡의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Old town road’는 빌보드 차트를 19주간 점령하며 빌보드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한 노래가 됐다. 완벽한 전략과 적절한 플랫폼 활용으로 거둔 승리였다.


◆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세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

사실 팝 역사에서 이와 같은 인기 양상은 낯설지 않다. 유튜브가 완전히 자리 잡은 2010년대부터는 특히 그렇다. 바우어(Baauer)의 ‘Harlem Shake’(2013)는 수많은 사람이 올린 집단 댄스 동영상에 힘입어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 역시 근간에는 우스꽝스러운 뮤직비디오와 따라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말춤’이 있었다. 힙합 듀오 래 스레머드(Rae Sremmurd)의 ‘Black Beatles’(2016)는 틱톡 챌린지의 직계 조상이다. 한 학생에 의해 이들의 노래를 배경으로 한 ‘마네킹 챌린지(mannequin challenge)’가 생겨났고, 이는 곧 유튜브를 뒤덮으며 곡의 차트 정복을 이끌었다.


래 스레머드(Rae Sremmurd)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지난 10년간의 ‘바이럴(viral)’ 히트부터 최근 챌린지에 이르는 동향은 같은 맥락에 있다. 단지 이를 지칭하는 명확한 용어(챌린지)와 맞춤형 플랫폼(틱톡)이 생겼을 뿐이다. 어떤 면에선 과거의 플래시몹과도 상통한다. 특정 시간, 장소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모여 일정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플래시몹이 국지적 개별 현상이었다면, 온라인상에서 더 빠르고 많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챌린지는 국제적 공통 현상이다. 인터넷에서 적극적으로 ‘밈(meme)’을 향유하던 세대가 이제는 스스로 밈이 되길 자처하며 소셜 미디어에 그 모습을 전시, 공유하는 새로운 놀이 문화를 주도한다. 나아가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 창작자가 유행을 기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바이럴 마케팅이 음악 시장에서 더욱 큰 상승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환경적 요인도 있다. 과거엔 음악을 듣기 위해 바이닐, CD 등 실물 음반을 사야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번 구매한 앨범으로 평생을 들었다. 2000년대의 디지털 음원 역시 한 번 다운로드를 받는 것으로 끝이었다. 당연히 차트에 반영되는 횟수도 1회에 그쳤다. 물리 매체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2010년대 이후의 사정은 다르다. 클릭 한 번에 수백만 라이브러리에 접근할 수 있는 스트리밍은 사용자의 선택과 반복 청취에 더없이 적합하다. 빌보드가 유튜브 조회수와 스트리밍 수치를 차트 집계에 포함한 2013년 이후, 바이럴 히트곡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그 방증이다. 차트 집계 방식이 바뀌지 않았다면 ‘Harlem Shake’는 1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 관건은 재미!

챌린지는 ‘챌린저블(challengeable)’ 할 때 성립한다. 일반인의 눈에 안무의 동작, 동선이 어려워 보인다면 도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박진영, 현아의 챌린지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다. 해외에서도 시아라(Ciara)의 ‘Level Up’(2018) 챌린지가 비슷한 이유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시 ‘아무노래’를 보자. 상체의 안무는 단순하고 하체는 거의 쓰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안무가 노래 가사와 상응해 익히기도 어렵지 않다. 정 안 되면, 노랫말처럼 아무렇게나 춰도 된다. 이전의 ‘마네킹 챌린지’는 음악에 맞춰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됐고, ‘이햐 챌린지’는 카우보이 복장에 말을 타는 듯한 춤을 추는 게 전부였다. 유행의 비법은 간단하다.



당분간 가요계의 키워드는 챌린지가 될 공산이 크다. 마침내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가 나온 데다, 전례가 많지 않아 신선하기까지 하다. 대중의 반감과 맞서야 하는 ‘노하우’와는 달리, 트렌드세터의 이미지를 획득할 수도 있다. 이미 ‘아무노래’ 이후 불과 한 달여 사이에 체리블렛, 이달의 소녀, 여자친구 등이 저마다의 챌린지를 시도했다.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지만, 변화한 마케팅 분위기를 읽어내기엔 충분하다. 이제는 레거시 미디어에 맞춰 전통적인 홍보 전략을 세우는 것보다 치밀한 아이디어 하나가 중요해졌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최소의 시간을 들여 최대의 재미를 찾는다. 터치와 동시에 바뀌는 화면처럼, 보는 즉시 자극이 오지 않으면 다음 콘텐츠로 밀어낸다. 관건은 얼마나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깊은 인상과 재미를 남기느냐다. 틱톡은 15초 만에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그들에겐 이 글도 읽히지 않겠지만,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창작자라면 이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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