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j May 13. 2018

In the name of the family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History's third dimension is always fiction
    - Herman Hesse, The Glass Bead Game


어머 제레미 아이언스에게 교황 코스프레 시키고 싶었던 사람이 꽤 있었나 봐

쇼타임의 The Borgias - the original crime family 가 나왔을 때 튀어나온 사심이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괴롭히고 싶은 성직자의 얼굴을 가졌다 (이제 신부, 추기경, 교황 다 했다. 다 이루었어). 처음 제레미 아이언스를 - 어느 영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 봤을 때 랄프 신부(가시나무 새)가 여기 있다!라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로드리고 보르지아 - 잠깐만,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가면 갈수록 불어서 터질 것 같아지는데?! 줄리아 파르네세보다 예쁜 알렉산데르 6세(!!!) - 따위의 망상을 거듭하다가 결국 드라마는 안 봤다(...)


이 "정통 범죄 가문"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건 어쩌다 보니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의 여인들 에서였지. 대상에 대한 애정이 강할수록 이 분의 글은 동인지가 되어가는데, 옛날 책이라도 예외는 아니라서, 루크레치아 파트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루크레치아 말고 체사레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결국 이 분 체사레 보르지아에 대한 책도 썼고 호기심으로 그 책을 읽은 뒤 조용히 덮고 그 이후로 나나미 여사의 글은 에세이만 읽고 있다. 사랑이 지나치니 무서웠어.


어쨌든, 제레미 아이언스 덕분에 다시 관심이 생겨서 검색을 좀 하니 In the name of the family (by Sarah Dunant)라는 소설이 잡혔다. 나나미 여사 덕분에 보르지아 가문에 대해 쓰는 사람들을 좀 경계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우선 (1) 스스로 소설이라 못 박으며 (2) 아마존 평이 꽤 좋고 (3) 루크레치아가 바보가 아니다 (중요).


The Guardian평에는 매우 적절하게 보르지아 가문 아이들을 묘사한다 "trained from birth to fight their way to power" 루크레치아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까 내가 나나미 여사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묘사를 읽었을 때 뭔가 찜찜했던 게 이거. 이 루크레치아가 너무 멍청해...


순진한 건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랬을 것도 같고. 하지만 시오노 여사님의 주장 정도의 멍청함이라? 어쨌든 그래서 나의 망상은 이랬다 - 루크레치아는 겉으로는 자기 생각 같은 것 없는 것 같고 그냥 아빠나 오빠가 시키는 데로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시키는 데로 하기도 했고. 몇 번인가 반항은 했지만), 안 보이는 부분에서는 생각 많고 속으로 삭히는 거 엄청 많은 타입이지 않았을까, 오빠나 아빠 때문에 분하고 짜증 나도 그 그늘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도 제대로 아니까 반쯤 포기하고, 그래도 보르지아의 아이니, 그 오빠나 아빠 라던가 지금 상황이라던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있었을 거고...? 그리고 사실 머리도 꽤 좋았어야 하지 않을까. 체사레 & 로드리고에게 끌려다니면서 휘말리긴 했지만 두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살아남았으니까. 그것도 데스테 집안 안주인으로. 물론 에르콜레 데스테가 죽고 나서였고 그녀 자신이 딱히 위협적이지 않아서 가능했겠지만. 잠깐, 저 위협적이지 않다, 역시 의도된 거라면...? (이건 너무 갔다) 망상은 끝나지 않는다.


아 Sarah Dunant의 소설이라고 다 만족하진 않았다 (그럴 리가). 가장 불편했던 건 역시 루크레치아가 너무 착한 척을 한다는 거... 로드리고의 찌질함/영악함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건 재미있었지만 (반노차한테 찌질거릴 때는 정말...). 그리고 체사레를 너무 예쁘고 악마적으로 묘사해서 이 분도 반했나 하는 의혹을 품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속삭이는 책들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