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순응 그리고 적응
오랫동안 브런치에 글을 기재하지 않았다.
함께 운영하는 블로그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홀가분하게 글을 쓰게 되는 반면 브런치는 내가 솔직해 지기 쉬는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게 글을 쓰는 시간은 전보다 더 많이 주어졌지만 복잡한 마음을 써내려갈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게 이유로써 가장 크리라 생각된다.
그동안의 내 일상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베스트는 단연 '임신'이다.
여자로서, 결혼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절차이고 예상 또한 해볼 법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나의 가까운 미래 계획엔 없었던 단어였다.
신랑과 제3 국을 꿈꾸며 달려보자는 우리의 원대한 꿈은 이렇게 잠시 미뤄지게 되었고 우리는 남들처럼 어느 부부처럼 아이를 위한 가족을 위한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기에겐 미안하지만 처음 사실은 안 순간엔 솔직히 그리 기쁘지 않았다.
에이, 설마 하는 의심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당황했다.
우리는 이제 막 뉴질랜드에 터를 잡은 1년 차 신혼부부였고 아직 모아 둔 돈도, 못 간 신혼여행도, 아직 가야 할 길도 먼데 이제 어떡하지? 지금 다니는 일은 바로 그만둬야 하나? 신랑의 생활비만으로 우리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경제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고 땀나도록 바쁘게 움직 여하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임신을 한 순간부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건 불가피했다.
이민을 하면서부터 여전히 앞으로의 내 삶, 내 인생의 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데 임신을 하게 되니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엄마가 돼야 하는 것일까' 하는 스스로의 실망감도 나를 지배했다.
내 인생에 처음 겪는 몸의 변화도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식욕은 한없이 떨어지고 그리도 좋아하던 음식들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화장실에 가는 일이 많아졌고 잠을 푹 잘 수 없게 되었으며 모든 의욕은 바닥을 쳤다.
하루 종일 피곤하고 잠이 오고 현기증이 나고 밤마다 두통에 시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이 나곤 한다.
감정이 잘 조절되지 않아 별거 아닌 장면에도 눈물이 나고 신랑의 악의 없는 말 한마디에도 한없이 서운해진다.
나는 아프지 않은 환자가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내 가족들은 나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며 좋은 생각을 많이 하라 하는데 도무지 좋은 생각을 할 거리가 없다.
아기를 보면 귀엽고 고맙지만 좋은 생각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매일이 피곤하고 때론 우울한데 기쁜 생각과 좋은 생각이 날 리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당황함'에서 시작한 나의 마음은 점차 안정 적여졌다.
나의 불안감과 걱정 속에서도 기특하리만치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감과 동시에 미안함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컨디션도 조금씩 회복이 되어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헤어질 때만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두통과 현기증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만큼 아기가 내 몸안에서 잘 크고 있다는 걸 안다.
스스로를 엄마라고 칭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남들처럼 육아일기를 쓴다던지 배를 만지며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잘 못하겠다.
그렇지만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다.
내게 와준 이 작은 생명이 점점 좋아지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아직도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곳에서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다.
멋지진 않더라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고 부모의 삶을 통해 아이가 살아가며 많은걸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앞으로 내가 보내게 될 6개월 남짓한 이 시간과 생활을 좀 더 이롭게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