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보들하지 않은 세상

저녁나절 아이들과의 대화

by 차민정

공모전 마감이 이번 주다. 저녁 먹고 치우는 시간이라도 좀 벌어보겠다고 집 앞 식당가로 향한다. 자전거에 씽씽이에 축구공에 물통 여러 개. 기저귀 가방을 졸업한 지 한참이지만 여전히 어깨는 무겁다. 인도 음식을 좋아하는 모미와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모아, 정체를 알기 어려운 퓨전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 식탁이 다채롭다.


"요즘 같으면 여보 친구 만나러 미국 가겠어?"


남편이 운을 뗀다.


"글쎄, 섣불리 가지는 못하겠다."


"왜, 아빠?"


"요새 미국에서 얼굴 하얗지 않으면 봉변당할 수 있거든. 우린 얼굴이 노랗잖아."


"우리 얼굴 하얀데? (맞은편 백인을 보며) 저만큼 하얘야 해?"


"저들은 머리가 노란데. 웃긴다, 그렇지?"


어쩌다가 미국, 중국 이야기가 나왔다. 제국주의와 패권. 아메리카 원주민과 인종 차별, 학살. 베네수엘라와 음파 병기. 조지아 연행 사건. 만담가 아빠 엄마 앞에서 아이들 눈이 동그랗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어떻게 잡혀갔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남편의 옆구리를 찌른다.


"나이에 맞지 않아. 식사 주제로 너무 무겁고 잔인해."

"아이들은 다음 주제로 관심이 넘어갔어. 여보가 지적해서 더 각인되는 거야."


고래, 돌고래의 음역대로 주제를 바꿔보지만, 소리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아이들은 궁금하다. 이야기는 통제할 수 있어. 세상은 표백할 수 없다. 나이에 맞지 않고 무겁고 잔인한 시대를 산다. 수저가 삽만큼 무겁다. 모래 씹는 기분이다.



세상이 팍팍해서 그래. 접시에 붙은 고추씨와 허브도 울고 있잖아 :(


땅땅한 배를 두드리며 놀이터로 향한다. 자전거와 씽씽이 위에서 맞는 바람은 더 시원한지 밤에 피는 여름 꽃처럼 아이들이 피어난다. 속이 텅 빈 쇠 구조물을 두드리며 듣지 못한 음악을 만든다. 장난스러운 표정과 신나는 손놀림. 축구공을 주고받는 경쾌한 발놀림. 쇠기둥에 이마를 부딪혀 눈물 쏙 뺀 녀석에게 줄 요량으로 집에서 얼음판을 들고 오며 딸기 한 바구니를 씻어온다. 혹이 난 이마를 맞대고 단물을 쪽쪽 삼키는 제비 새끼들. 보들보들한 세상을 물려줘야 할 텐데 요즘 세상은 닭 가슴살보다 더 팍팍해.


식탁만큼 거리가 다양해야 한다. 소리는 즐거워야 한다. 움직임은 자유로워야 한다. 걱정 없이 먹고 놀다 안전하게 잠드는 아이들의 일상이 어떤 데서는 당연하지 않다. 하루를 또 겨우 넘긴 얼굴 모를 그 친구들을 위해 잠들기 전에 기도한다. "견딜 힘을 주세요. 위로해 주세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세요."


신의 이름을 부르며 이기심을 채우는 사람들에게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가장 힘센 녀석이 이기심을 부려 흔들리는 질서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나? 우리가 나눌 저녁 식사만큼 함께 할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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