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P 대상 직원을 내보내는 것만이 최선일까

by 하니고

글로벌 회사에는 성과개선플랜(Performance Improvement Plan)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정의 자체는 구성원의 개선 가능성을 구조화하고, 기대 수준을 명확히 하며, 조직과 개인 모두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공식 프로세스다.


다만 암묵적으로는 성과평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레벨을 받은 사람들 혹은 성과평가 이전에도 성과가 올라오지 않는 직원을 PIP에 투입하고, 3개월 정도 강도 높게 트레이닝을 실시한 후 해당 직원을 정리해고하는 것이 회사(매니지먼트와 HR)의 기대치이다.


꽤 안정적인 국내 대기업들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나로서는 글로벌 문화의 기업으로 이직한 후 PIP를 매우 빈번하게 실행하고, 또 엄청난 푸쉬가 있는 것에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고 위로부터의 푸쉬는 있었지만 조직장인 내가 커버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은적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팀원을 아웃까지 시키지는 않더라도 PIP에 투입해서 위기감을 주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긴한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본인의 저성과의 원인이 본인이 아니라 조직장 혹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본인은 능력치가 높은 것으로 믿는 메타인지가 낮은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근본적으로 PIP에 반대하는 이유는 두가지였는데, 성과가 당장 안좋았다고 해도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서 일시적일 수 있고, 또 한번의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또 한가지는 빈번한 PIP가 조직 전체의 위기감을 지나치게 끌어올리고 궁극적으로는 회의감이나 무력감을 갖게해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직후 나의 조직원 중 한명이 이미 PIP에 투입되는 결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갓 입사한 내가 평가자가 될 수 없었으므로 이전 평가자가 그 팀원을 PIP에 투입하되 최종적으로 out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전 평가자는 그 친구가 저성과의 이슈도 분명히 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동료 조직원들의 네거티브한 피드백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때부터 천천히 조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의 대부분은 20대후반 30대 초반의 꽤 젊은 조직이고, 여자의 비중은 80%정도로 높았다.

그친구는 남자였는데, 조직원들과 대화를 하거나 어울리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업무는 팀과 함께하는 업무가 아니라 단독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함께 같이 일하는 팀원이 없으니 본인의 업무에 대한 고민을 같이하거나 털어놓을 상대가 없었음이 분명해보였다. 쑥쓰러움이 많은 성격으로 여자들이 모여서 얘기하고 있을때 넙죽넙죽 낄 수 있을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오해도 더 많이 쌓였을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이 친구의 한계나 부족함도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디테일이 빠져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도 보기 어려웠다. 주어진 일만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커뮤니케이션을 주도적으로 자발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꽤 빠른 페이스에서 일하는 스타트업에 어쩌면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친구를 다른 팀원들과 같은 일을 하도록 R&R을 바꾸어주었다.

지속적으로 매주, 혹은 주 2회 피드백을 주면서 디테일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강하게 푸쉬를 하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이 친구의 퍼포먼스가 빠른 시간 내에 올라오고 있었다. 특히 팀 내에서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고 슬랙에서도 더 자주, 구조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비단 나 뿐만 아니라 한국 오피스와 글로벌 오피스에서도 그의 변화된 모습과 에너지에 대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조금은 개선점이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주도성이나 커뮤니케이션이 눈에 띄게 개선되어서 3개월의 PIP는 잘 마무리가 되었고 그는 우리와 남을 수 있었다.


내가 그가 입사할때 hiring manager였다면 채용을 했을까 여러번 생각해봤다. 아마도 strong no를 주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이전 직장인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혼자서 프로젝트를 여러번 진행해봤고, 또 나이 어린 여자들과 잘 지내는 것이 힘들다고 얘기한 점 때문이다.


이렇게 lean한 스타트업 조직에서, 그리고 fast-pacing 환경에서 서울팀 내에서의 타팀들과 혹은 글로벌 오피스 사람들과 집약적이고도 집요할만큼 잦은 커뮤니케이션과 얼라인먼트는 필수인데, 혼자서 일해본 사람이 그걸 잘 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만 일했다는 점도 꺼림칙 하긴 하지만, 대기업에서의 경력이라도 조직 내에서 빠른 페이싱의 기능조직 안에서의 경험이 있다면 괜찮을 수 있기 때문에 그건 논외로 했다.

나이 어린 여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힘들다는 점도 그렇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든, 나이가 많든, 남자든 여자든 상대가 누가 되었든 대화를 시작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필수인 조직이기 때문이다.

나의 필요에 맞추어 누구라도 leverage할 수 있는 아주 목적지향적의 사람이 되어야 일을 뚫고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채용이 되었고 1년이상 회사에서 일을 해왔고, 이런 상황에서 이 친구를 내보내는 것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아니다가 답인것 같다.


적절한 코칭과 역할부여를 받은 그친구의 턴어라운드를 모두 보았고, 전체 팀의 분위기가 그 친구로 인해서 다시한번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대상자의 강한 의지와 조직장의 지속적이고 골치아픈 피드백이 함께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팀원의 동기부여와 성과가 개선되는 것을 보고 나는 많은 기업들이 진행하는 PIP와 해고가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믿음을 더 강하게 갖게되었다.


"이렇게 많이 배우고 코칭을 받은 것이 제 8년 커리에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영어 때문에 서러웠던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