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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Apr 07. 2020

한 올의 고백

마음을 스치는 건 여전히 작고 가냘픈 일들이다.

애인이 차 안에서 불쑥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너를 만나고 집에 돌아온 날, 등이 간지럽기에 이게 뭘까, 하고 티셔츠를 벗어 확인했더니 네 머리카락이 하나 붙어있더라. 그리고 그게 참 좋았'더란 것이었다.

데이트를 하고 텅 빈 방에 돌아가면 종종 내 머리카락 몇 개가 용케 거기까지 가서 떨어져 있다고 했다. 담백한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말 역시 별생각 없이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게 (당시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약간 충격을 받을 만큼 인상 깊었다.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실제로) 머리카락을 불결하고 창피한 걸로 여기고 있었다. 내 기준 머리카락=음식물 쓰레기다. 붙어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일순간 떨어지면서 금방 지저분한 존재가 돼버리는 머리카락과 얼마 전까지 수다 떨면서 냠냠 맛있게 먹던 걸 식사 땡, 하고 자리를 뜨는 순간 쓰레기로 전락하는 음식물의 신세가 비슷하다고 느끼는지도.

그런 머리카락 한올이 좋다니 그보다 다정한 말이 또 있을까. 나는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꼈으며, 그가 했던 다른 무수한 말과 약속보다 진실한 마음이었다고 지금까지도 믿고 있다. 그 말을 듣던 순간의 기억은 몇 년의 연애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꼽힌다. 차 안으로 쏟아지던 햇빛과 유리창 너머의 좁은 골목길이 기억난다.

마음을 스치는 건 여전히 작고 가냘픈 일들이다. 큰일 같은 건 기억도 안 난다. 애초에 연애에서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 일인지 도통 모르겠다.


*커버: Pierre Boncom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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