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에게 선물이라며 커다란 쇼핑백을 받았다. 크고 무겁고 고급스러운 쇼핑백 안에는 외계인의 뇌처럼 생긴 선인장 화분이 들어있었다. 꽃을 사려다가 화분을 골랐다고 멋쩍게 말했다. 물은 한 달에 한 번만 주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화분은 승진 기념으로 거래처에게 받은 것 같은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말단 사원이지만 금방 이사쯤 된 것처럼 행복해졌다. 카드도 있다고 해서 쇼핑백을 뒤져봤더니, 두툼한 메모지가 나왔다. 커다란 하트와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로 자기 이름이 쓰여 있었다. 사랑스러운 카드. 감격스러운 나.
회사까지 데려다준다기에 애인의 차를 얻어 탔는데, 차 안에 구깃하게 반으로 접힌 메모지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펼쳐봤더니 종이엔 온통 하트만 그려져 있다. “하트 그리는 게 어렵더라고.” 망친 카드 중 하나는 하트가 제일 잘 그려졌는데, 다 그리고 나서 보니까 종이가 뒤집혀있어 망쳤단다. 망친 카드와 안 망친 카드 모두를 고이 챙겨 회사로 돌아와 칸막이에 붙이고, 듬직한 화분도 책상 위에 올렸다. 언제 퇴사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삭막한 내 자리가 이렇게 따뜻해졌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