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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Jul 11. 2020

듣고 싶은 말

그 말로 타인을 위로한다

고된 일이 없진 않지만 그것까지 꼭 끌어안고 있는 여름.

사람들과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싶다. 잠도 안 자고, 집에도 안 들어가고, 낮도 밤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 따위 1초도 필요 없다. 별미라고 소문이 자자한 기간 한정 아이스크림 가게도 혼자 가는 게 싫어 여태 미루고 있다.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친구라 부른다. 친구와 친구 비슷한 사람, 친구 같지만은 않은 사람. 이미 아는 사람과 알고 싶은 사람 그리고 알아가는 사람. 성별도, 나이도 상관없다. 임의상 모두 친구. 이 세상 모든 색에 이름을 붙일 수 없듯이, 친구니 뭐니 하는 이름표라는 게 왕왕 무용하다. 하늘색이란 이름으로 에둘러 묶어두기엔 해 질 녘의 하늘은 순간마다 달라진다. 그럼에도 친구라 칭하는 이유는 관계를 정립하고 싶은 사람이 더러 존재하며, 나와 다른 그들을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얼 해도 괜찮은 나날 속에 결코 포용할 수 없는 건 사랑의 언어. 더 구체적으로는 감정의 약속. 사랑한다는 말의 함정은 그 시제에 있다. 사랑한다는 말엔 미래 시제가 없다. 사랑의 표현은 그 즉시 휘발하는 까닭이다. 지금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이미 지나가버린 ‘지금’의 순간처럼.

오해하지 말기를. 사랑의 말에 아무 가치가 없다고 치부하는 게 아니다. 도리어 그 가치와 무게를 정확하게 알고 마주해야 한단 거다. 영원히 사랑한다’ 거나 ‘언제까지나 사랑한다’는 말은 ‘지금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에 걸맞은 태도와 기대를 지니면 된다.

소나기가 내린 후에 맑게 개이는 하늘처럼 계절의 모순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잘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은 감정을 다스린다. 듣고 싶은 말로 타인을 위로한다. 마음은 꼭꼭 눌러 ‘그냥’이라 둘러댄다. 약속을 취소하고 곁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알고 싶은 만큼 닫아버린다. 노력한 만큼 체념한다. 좋은 만큼 미움과 섭섭함을 키운다. 가벼운 사람을 혐오하면서 진지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잘하고 싶은 만큼 끝내버릴 궁리를 한다. 벅찬 밤을 지새우고, 허무한 아침을 맞는다.

무얼 해도 괜찮을 것이다. 휘청하게 긴 낮과 찰나처럼 짧은 밤을 기꺼이 대화하고, 농담하며, 시답게 보낸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괜찮지만, 사랑한다는 말 같은 건 부디 서랍 깊이 넣어두고 꺼내지 말기를. 그런 얘기는 이 가벼운 계절이 다 끝나고 꺼내야 꿈처럼 날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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