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있으면서 거기에 존재하는 법.
2017/03/16
카드 지갑, 휴대전화, 립밤. 늘 지니는 소지품이다. 최근 두 가지가 더 생겼다. 손바닥 크기의 스케치북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써지는 펜이다.
종종 내 볼을 쓰다듬으며 애인이 말한다. "민지는 참 참을성이 없지." 예리하다. 실로 그러하다.
시간을 칼 같이 맞춰나간 약속에서 상대를 기다릴 때, 프리랜서인 애인을 무작정 찾아가 그의 일과가 끝나길 하릴없이 기다릴 때,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메뉴가 더디 나올 때, 무리의 대화에 끼지 못할 때, 무리의 대화에 끼고 싶지 않을 때.
시간과 시간 사이, 상황과 상황 사이. 하얀 공백이 발생한다. 참을성을 애타게 요하는 순간, 참을성이란 건 집 나간 고양이처럼 어디에도 없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한 없이 지루해하고, 삐죽 튀어나온 입으로 툴툴댄다.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 따분한 신세를 한탄한다.
그럴 때마다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것을 종이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대상은 흔하디 흔하다. 마시고 있는 찻잔이나 푹 젖은 티백, 주머니 속 립밤, 여태 열심히 일하는 애인의 성실한 옆모습 등이다.
그림 그리기는 책 읽기와 다르다. 독서를 할 때 나는 거기 있으면서, 거기에 없다. 다른 세계로 이동해 일련의 사건을 겪느라 기진맥진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나는 거기에 있고, 또 거기에 있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굉장히 거기에 있다. 대상의 선을 더듬고, 깊이를 가늠하고, 시선으로 촉감을 느낀다. 낙서의 대상을 거의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리기 전까지 보던 것은 실은 진짜 보고 있던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기는 곧 발견의 과정. 그러므로 그리기는 손이 아니라 온전히 눈의 영역이다.
발견한다. 애인의 울퉁불퉁한 코의 굴곡을. 다른 방향으로 나서 한 올만 삐죽 튀어나온 왼쪽 눈썹을. 수염 어디가 유독 덥수룩하고 어디가 좀 느슨한지를. 오른뺨 위 출구를 못 찾고 안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인그로운 헤어의 존재를. 끝이 벗겨진 매니큐어처럼 앞니 안쪽이 살짝 깨져 있음을. 그래서 그의 무릎을 베고 그의 웃는 얼굴을 올려다보면, 그 모습이 해적왕 잭 스패로우처럼 유쾌하면서 동시에 불량해 보임을.
취미 생활을 가져보잔 취지였는데, 낙서는 시간과 시간 사이를 메꾸고 있다. 참을성은 여전히 없지만, 불평할 일도 없다. 어디서든 펜과 스케치북을 꺼내면 그만이므로.
'발견'을 거듭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일을 마친 애인이 다가와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다. 물처럼 흐르던 가느다란 선이 멈춘다. 스케치북을 덮고 지금껏 그리던 눈과 눈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