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거실과는 다른 장소인 그곳에.
한밤 중 화장실을 다녀오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거실로 나갔다. 밤의 거실은 푸르게 젖어있고 깊이 잠겨있다. 햇빛이 닿지 않는 저어 아래 바닷속처럼. 그 서늘함과 신비로움이 낯설고 아름다워 등에는 소름이 돋는다.
검은 화분이 줄지어 있는 베란다에 들어서면 짙은 밤 기운이 훅, 하고 불어온다. 반쯤 열린 창으로 들려오는 밤의 속삭임엔 낮과는 다른 부피가 있다. 떠들썩하진 않은데 생기가 넘치고 그 풍성함엔 권태로운 데가 없어 신선하다. 작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도로와 거기서 일어나는 바람의 소음, 피리 소리와 다르지 않은 여름 벌레 소리가 낮에는 이렇게 가까이 들리지 않았다.
며칠 내리던 비는 그치고 태풍은 아마도 다 지나간 뒤일 텐데, 밤에선 여전히 비의 축축한 냄새가 묻어있다. 그 냄새가 불 꺼진 밤의 거실을 채우고 있다.
cover: Marlene Du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