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은 그리움.
집 근처에 동네 중학교가 하나 있고, 그 맞은편엔 버드나무 몇 그루가 나란하다. 잠원 한강 지구에서 반포 한강 지구 사이의 길목에는 커다랗고 듬직한 버드나무가 하나 우뚝 심어져 있다. 인천공항에 가는 길, — 운전을 하지 않아 정확한 구간은 모르지만 — 한강과 차도 사이 황량해 보이는 땅엔 야생처럼 자란 버드나무가 산발적으로 많은 땅이 있다. 여기까지 대충 마음속의 버드나무 지도.
버드나무의 위치를 기억한다. 대단히 우람해서도 아니고, 가장 실용적이어서도 아니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제일 좋아한다고 꼽는 것에 대부분 그 이유를 든다.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자 위험 요소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콕콕 건드리는 건 떨치기가 어렵다.
꿈과 이상이 높아 하늘로 쭉쭉 뻗어나가기에 정신이 없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버드나무만이 땅과 사람을 굽어본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색종이처럼 팔랑거리는 이파리를 드리운 채. 축 처진 연약한 가지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보듬는 손길을 닮았다. 하늘하늘한 버들가지가 만드는 풍성한 커튼 속에 폭 안기고 싶은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위기를 느끼면 머리만 숨는다는 꿩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안전한 기분이 들 테니까.
한편, 서양에서 버드나무는 어쩐지 불길하거나 무섭고, 슬픈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수양버들의 영어 이름은 weeping willow인데, weep은 ‘가지가 늘어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울고 있는’이란 뜻도 있다. 수양버들의 꽃말은 비애와 추도이며, 소설 속에서도 뿌연 안개에 가려진 버드나무는 비밀을 숨기고 있거나, 그 아래서 사람이 죽는 등 비극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배경이 된다.
"그런 애가 아니라고요." 버드나무는 밝음과 따스함 그 자체인데. 버드나무를 대신해 바짝 억울하고 분개한다. 키가 작은 나 같은 사람이 팔을 뻗어 그 손가락 같은 가지를 맞잡을 수 있는 것은 버드나무뿐이다. 버드나무의 선들거리는 자태는 정겨움의 시각화. 버드나무의 꽃말을 다시 지을 수 있다면 온 마음을 담아 그리움과 인자함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