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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May 19. 2021

사소하고 위대한 집안일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어난 후에 침대 정리도 내 손으로 한 적이 없었다. 정리나 청소, 빨래, 설거지 모두 남의 손을 빌었다. 그거 말고도 나는 할 게 많아서. 더 중요한 일들이 얼마든 있어서.


글, 그림, 요리, 기획.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눈앞에서 (마법처럼) 무언가 만들어내고 나타나게 하는 일. 그런 일을 좋아했다. 결과와 수준의 정도를 떠나 창조하는 일엔 창작자가 드러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든, 김 모 씨의 낙서와 박 모 씨의 낙서는 다르다는 것.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내는 일을 하면 내가 자신에게 느끼는 애매한 존재에도, 이미 지나쳐 버린 시간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집 청소는 아무리 잘해봐야 그 집이 그 집이다. 만들어내는 일이 한 걸음이라도 전진하는 것 같았다면, 청소하는 일은 두 세 걸음 후진했다가 기껏해야 겨우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크레딧도 빠져 있다. 빈 접시는 김 모 씨가 헹구든 박 모 씨가 헹구든 (손이 미끄러져 깨 먹지만 않는다면) 원래 상태로 ‘회귀’하는 것뿐이다. 얼마나 훌륭하든 작자 미상의 그림이고 기자 이름이 빠진 기사다. 정리하고, 보수하고, 유지하고, 지켜내는 일을 외면했다. 가치가 있고 숭고한 일이지만 희생적이고 마땅한 존중을 받을 수 없는 일엔 일말의 의지나 목적이 생기지 않았다.


예전엔 그렇게 느꼈다.


작년부터 내 손으로 하는 사소한 집안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서서히 배워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베개와 이불을 탈탈 털어 정리하고, 하루 몇 번씩 물을 받고 끓이고 따른 찻잔과 주전자를 씻고, 오래 들춰보지 않은 책 위나 방구석의 먼지를 닦는 일이 간혹 명상의 시간처럼 다가온다. (요가에서 ‘사우차’라는 청결함을 뜻하는 단어가 있는데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해 행하는 행동을 일컬으며, 청정을 유지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 관찰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막히고 쌓여있어 어지럽던 것들이 눈앞에서 질서를 찾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각이 선명해진다. 깨끗한 여백이 드러난 자리로 공기와 생각의 흐름이 바뀐다. 오전에는 잠들어있던 오감을 부드럽게 깨우고, 오후나 주말에는 휴식과 치유를 선사하니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의식이었던 것. 크레딧이 있건 없건, 누가 알아주든 말든 스스로 깨우치고 느끼는 노동의 보람과 즐거움이 있다. 작은 일의 위대함.


주변을 채우던 개체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애정은 깊어지고 있다. 만들거나 사는 일은 어쩌면 첫눈에 빠진 사랑과 비슷한 게 아닐까? (그 마저도 실은 사랑이라 믿는 호기심과 호감에 가까울 테지만) 살 때만 신나서 방치한 물건이 내게도 많았다. 진짜 애정이냐 아니냐는 그다음 단계부터 나뉘는 것일지 모른다. 만나고 들인 물건은 (그리고 사람까지도) 시간을 들여 먼지를 털고, 씻고, 말리고, 돌보고, 가꾸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소중해질 테니까.


집안일을 우습게 보지 말라. 그걸 행하는 사람은 지금 도를 닦는 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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