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지 Apr 17. 2021

하늘색 냄새


하늘색 냄새가 난다. 희미한 소독약 냄새. 수영장 냄새다.   체육관에 수영 강습을 등록한   일주일이 되었다.


내가 속한 평일 오전 초급반은 일명 펭귄 반이다. '초급반 학생들은 죄다 검은 거 아님 흰 거만 입는다’고 상급반 회원들이 그렇게 부른단다. 아닌 게 아니라 당장 나만 해도 창백한 피부에 수영모와 수영복, 물안경까지 모두 검은색인 걸.


우리 반이 펭귄이라면 상급반은 그야말로 만개한 꽃밭의 형국. 수영복의 색과 무늬가 화사하고 화려한 것은 물론 저마다 개성도 가득하다. 우리 펭귄들은 흔히 팔이나 다리를 가리는 보디슈트 형태의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상급반 회원은 등이나 팔, 다리도 대범하게 노출한다. 군살이 붙어있을지언정 근육이 멋지게 잡혀있는 몸에는 활력이 넘친다. 그들이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행군하는 돌고래 부대처럼 절도가 있어 가끔 나는 레인 저편에서 수영을 하다가도 넋 놓고 바라보기 일쑤다.


초급, 상급반을 아울러 회원들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라 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아기 취급을 받는다. 새 회원인 나를 보고 "아유~ 애기가 왔네~”하고 맞아주셨을 때는 고마운 마음에 응당 옹알이 톤을 섞은 인사로 회답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고민하였다. 이외에도 “물오리 같다(그저 수영했을 뿐)”, “얼굴형도 빼꼼해서 싱크로나이즈드 하는 언니 같다(??)” 등등 방귀만 뀌어도 칭찬받는 신생아처럼 사랑받고 있다.


이 수영강습이 정말로 즐겁다. 온 하루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수영을 할 정도다. 숨이 턱턱 막히고 얼굴에 열이 올라 발그레해질 때까지 물장구를 치기 때문에 50분의 강습이 끝나고 물 밖으로 나오면 매번 술 한 잔을 걸친 것처럼 어지럽다. ‘좋아하기만 해야지. 잘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꼭 대충 해야지’, 생각해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맨 앞줄에서 열정과 기운을 불태우며 물놀이를 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선생님은 벌써 나를 모범생이라고 부른다. ‘이제 비뚤어지겠어!’ 다짐하고 비행의 하루 일과를 꼼꼼히 세운 다음에 고작 학원 땡땡이치고 저녁 시간 맞춰 귀가하는 중학생과 같은 모습이다. 휴. 샤워를 하면서 생각한다. 또 또 열심히 해버렸구나!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산발 머리를 하고 센터를 나선다. 샴푸와 보디샤워 향이 얼마나 강할지언정 바람이 불면 귀 뒤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 그게 꼭 누가 부르는 것 같아서 오던 길을 돌아보게 된다. 집으로 향하는 짧은 길이다. 하늘색 냄새를 상기하는 동안, 매일의 계절과 아침과 날씨가 맨 얼굴에 스민다. 얼굴과 표정이 된다.  


누군가 어떻게 지내,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하루를 지탱하고 있어 라고 대답할 것이다.


***Cover: The Bigger Splash by David Hockney.

작가의 이전글 비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